금융 가에 타율 인사바람|행장 급 전격 인사에 얽힌 뒷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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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은이 20일 임시 주총을 열고 박종석씨(전 국민은행장)를 김상찬 행장후임으로 선출함에 따라 이 달 중 3명의 행장 급이 바뀌었다.
경질인사가 없을 것처럼 얘기되다가 이렇게 대거 바뀜으로 해서 앞으로 또 어떤 바람이 불지 몰라 금융 가는 더욱 술렁이고 있다.
이날 주 총에서는 이현기 감사가 전무로, 구본영 상무가 감사로 각각 선임되어 일단 외부영입은 행장 1명 선에서 그쳤지만 지금까지 외쳐 온「은행자율화」는 그게 퇴색해 버렸다는 게 금융 가의 중론이다.

<행장·전무 같이 물러나>
이번에 김상찬 상은 행장이 물러난 것은 상당한「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김 행장 본인이 지난2월 정인용 재무부장관을 찾아가 사의를 표명키도 했고 갖가지 루머에 휘말리면서 경질 설이 쉴새 없이 나온 것은 사실. 그러나 지난 8월 송기태 조흥은행 장이 물러난 후로는 유임 설이 강력했었고 본인도 유임가능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더욱이 8월에 서재관 전무가 이미 물러난 터라 행장·전무가 동시에 물러나지는 않으리라는 점 등을 들어 금융계에서는 유임 설이 굳어지기도 했었다.

<지난봄 소문이 맞은 셈>
김 행장의 경질이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은 지난달 말 정재무가 부실기업 정리관계를 고위층에 보고했을 무렵이었다는 후문.
보고과정에서 김 행장이 부실기업 정리에 대한 적극성이 부족치 않느냐는 말이 나왔으며 이와 대비해 박종석 국민은행장의 경영능력이 높이 평가되어 김 행장 퇴임, 박 행장 전출이 급진전됐다는 것.
공교롭게도 김 행장이 그만두고 그 후임에 박 행장이 가게 될 것이라는 소문은 지난봄부터 나 있었는데 결국 그것이 들어맞은 셈이다.

<본인자신도 의외로>
그러나 막상 상업은행장으로 영전(?)된 박종석 전 국민은행장 본인은 이번 인사를 의외로 받아들이는 기색.
올 여름께 부 터 박 행장의 전출 설이 상당히 강력하게 떠돌 때도『잘 앉아 있는 사람을 공연히 흔든다』 고 정색을 하며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실상 박 행장의 전임은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에 따른 영전이랄 수 있는데 본인 스스로 그다지 기쁜 표정(?) 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이는 시중은행장자리가 갖는 비중이 그만큼 줄고 부실기업(부실채권)문제 등 골칫거리는 많아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뒷공론이다.
결국 상은은 김상찬 행장이 과거 국민은행 전무 등으로 오래 근무하다 옮겨 온데 이어 박 행장이 신임행장으로 오게 됨으로써 2대째 국민은 출신행장을 맞게 되는 셈.

<승진 기대 자들 아쉬움>
국민은행장으로 새로 임명된 김욱태 전 관세청장에 대해서도 금융계에서는 다소 예상 밖의 인사라는 평들이다.
신임 김 행장이 재무관료로 잔뼈가 굵긴 했지만 그 경력이 세정, 그것도 관세 쪽 일변도 여서 실제 금융 쪽과는 관계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국민은행장자리에는 올해 말에 임기 만료되는 이강수 한은 부총재도 거론이 됐었다.
이에 따라 인사 체증해소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던 한 은도 적잖게 아쉬워하는 눈치.
국민은행으로서는 당초 박종석 행장이 유임될 것으로 믿고 있던 터에 비 금융계 인사가 낙하산 식으로 내려오자 국책은행의 성격상 어쩔 수는 없다 해도 떨떠름 해하는 느낌을 감추지 못하면서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신임 김 행장이 5년 넘어 관세청장 일을 무난히 치려 낸 조직관리 능력을 보더라도 국민 은행을 잘 이끌어 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학자 출신 금의환향>
신용보증기금은 곽상수 이사장이 물러나고 안승철 KDI원장이 새 이사장으로 들어앉았는데 그것은 그 동안 소문도 나 있지 않은 것이어서 약간의 충격파를 던지기도 했다.
곽 전 이사장의 경우 직선적인 성격으로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하지는 않으나 새 사옥 마련 등 신보의 기틀을 다지는데 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안승철 씨에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임기 중에 물러났다는 후문.
KDl원장에서 옮겨온 안 이사장에 대해서도 학자출신에다 한은 출신이라서 금융계에 금의환향(?)한 셈인데 신용보증기금이 업무나 인원의 구성상 KDI와 크게 다른 금융기관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에 확정된 인사 외에 올해 임기 만료로 인사 가능성이 있는 자리는 설홍렬 한일 은행장, 황창기 한미은행장과 한은 이강수 부총재 및 전영수 감독원부원장 등.
그러나 초임이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터라 유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한때 임기와는 관계없이 이석주 제일은행장의 경질 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이는 부실기업정리과정에서 나타난 다소의 잡음이 과장, 와전된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란 것이 금융 가의 얘기다.

<해명 없이 과잉반응>
올해 은행인사에서 노출된 문제점은 무엇보다도「은행자율화」란 구호가 허울뿐인 게 아니냐는 우려와 루머나 투서 등에 대한 과잉반응이라 할 수 있다.
송기태 조흥은행 장 때는 퇴진 이유는 그렇다 쳐도 후임이 김영석 전무(당시)로 결정돼, 정재무도「자율화」의 정책 등으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상은 인사로 금융계 사람들은 이 같은 기대는 사실상 무산된 느낌을 받고 있는 듯.
또 조흥·상업·신보 등이 모두 투서나 루머에 휘말렸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 없이 경질로 끝난 것은 앞으로 이 같은 작폐가 더욱 횡행 할 가능성을 높여 준다는 데서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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