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결정」소식에 정가 충격|「유성환 의원 발언 파문」…여-야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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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성환 의원의 발언파문은 급기야 유 의원 구속으로까지 번져 정국이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대정부질문 첫날부터 중단사태를 겪은 국회는 잇달아 14일에도 중도에 끝나고 당분간 공전이 불가피한 가운데 여야는 초긴장 상태.

<구속 결정>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은 l5일 아침 모처에서 노신영 국무총리와 정부 모 고위당국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위당정 협의를 한 후 상오 9시5분쯤 굳은 표정으로 당사에 도착해 이춘구 사무총장·심명보 대변인 등과 10여분간 요담한 후 바로 국회로 출발.
심 대변인은 『당국에서 유성환 의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국회에 기자들이 가 있느냐. 그쪽에서 뉴스가 나올 것』이라고 말해 노 대표가 이재형국회의장을 만나 유 의원을 구속키로 한 고위당정협의 결과를 고지하는 절차가 있을 것임을 암시.
심 대변인은 또『법원 쪽을 주시해 보라』 고 강조한 후 『국가가 있고 국회도 있는 게 아니냐. 빨갱이 세상이 된 후에 국회가 있으면 무엇하겠느냐. 월남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개조의 말을 반복.

<신민당 분위기>
15일 상오 신민당의 확대 간부회의는 유성환 의원의 발언파동과 관련, 『무엇보다 개헌정국으로의 복귀가 필요하다. 유 의원이 해명할 수 있는 부분은 빨리 해명하고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분위기였으나 당국의 구속영장청구 소식이 전해지자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며 갑자기 침통한 분위기.
회의에 앞서 이민우 총재는『나라와 민족을 위해 들을 것은 충분히 듣고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민정당을 나무라면서도 『무엇보다 개헌정국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유 의원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 눈치.
이중재 부총재도 『국시문제를 느닷없이 거론한 것은 유 의원이 정치적으로 미숙한 탓』이라며 『민정당이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만 없다면 유 의원이 빨리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넘어가야 한다』 고 주장.
그러나 유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소식이 전해진 뒤 참석자들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한마디 말도 못했다고 참석자가 전언.
이에 앞서 이 총재는 자택의 유 의원과 전화를 통화, 이날 아침 8시 반쯤 검찰의 조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완성되지 않은 초고를 내돌리면 안되지.』라고 다소 짜증스럽게 나무라면서 『삼민…그런 것도 원고에 있었느냐』고 확인.
한편 김영삼 신민당 상임고문은 13일 밤늦게 김동영 원내총무· 홍사덕 대변인·유성환 의원을 상도동자택으로 불러 14일 본회의질문에서 개헌문제와 관련이 없는 지엽적인 문제를 거론, 정국을 경색 시킨 것은 전술상 미숙한 것이었다고 나무랐다는 후문.
김 고문은 이 자리에서『하필 쓸데없는 지엽적인 문제를 건드려 개헌정국의 초점을 흐리게 했느냐』며『왜 반공과 관련해 트집 잡힐 얘기를 하나』 고 유 의원을 나무란 뒤 『적극적으로 나서서 빨리 매듭 짓도록 하라』고 김 총무에게 지시.
한편 이날 회의에 앞서 김동영 총무가 여권 측 사람을 만나 유 의원에 대한 당국의 구속 영장 청구소식을 통보 받았는데 김 총무는『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오해가 심화돼 있음을 알았다. 과민하기 짝이 없더라』고 회의에 보고.

<의장 실 요담>
노태우 민정당대표는 이날 정부·여당의 결정을 이재형 국회의장을 찾아 설명했는데 노 대표가 의장실에 있는 동안 상오10시45분쯤 이민우 신민당총재도 의장 실을 방문. 이 총재는 10여분간 기다렸다가 이 의장과 노 대표의 얘기가 끝나고 노 대표가 나간 후 이 의장과 30여분간 요담.
이 자리에서 이 의장은 『어제부터「특별한 느낌」이 와 김동영 신민당총무에게도 여러 가지를 당부했는데 결국 나의 간절한 희망과는 달리 염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며 『정부에서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터여서…』라고 피력.
이에 이 총재는 『우리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봉공 하자는 기회로 삼았던 12대 국회에서 이런 불상사가 벌어져서야 되겠느냐』며 『유 의원의 원고를 다시 전체적으로 파악해 보니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는데 거두절미해서 특정부분만을 천착하면 다소간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고 설명.
이 총재는 이어『어쨌거나 그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라며『그러나 운경(이 의장 아호)도 알다시피 우리 당의 법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민당 이래 반공을 제1의 지도노선으로 삼아 왔고 이런 점을 우리 국민이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부연.
이 총재는『민정당이 무슨 목적에서 그러는지 몰라도 용공운운하고 사상논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이라며『최후까지 의회의 수장으로서 의회의 권위와 전통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이에 대해 이 의장은『내가 어찌 인석(이 총재 아호) 의 마음을 모르겠느냐』고 응답.
한편 이 의장을 만나고 대표 위원 실로 돌아온 노태우 대표는 이한동 총무·김태호 사무차장 및 청와대 보고를 마치고 뒤늦게 합류한 이춘구 사무총장과 함께 구속처리 방침에 대한 신민당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숙의.
노 대표는『반공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통일의 측면에서는 무력적화통일을 반대하는 등의 뜻이 함축돼 있다』면서 국민들에게 이번 사태에 관해 자세히 알려야 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에게 지시.

<신민 저지 준비>
이민우 총재가 이재형 의장 실로 간 이후 김동영 총무는 총무 실에서 부 총무들을 비롯한 몇몇 소강초선의원들과 민정당 측의 이날 중 구속동의 안 강행처리에 대비한 각종 실력저지방안을 강구.
김 총무는『동료의원이 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바라만 볼 수 있겠느냐』면서『동의 안을 처리한다면 우리보고 단상을 점거하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고 피력.

<문제의 유 의원 원고>
유 의원의 당초 원고 중 민정당 측에서 문제삼았던 대목은 △국시거론 △인천사태 △삼민이론해설 △칼잡이의 권력비호 등이었는데 이중 앞부분에 있던 국시부분에서 제동이 걸린 것.
유 의원은 자기발언으로 소란이 빚어진 후『당초 원고는 완성된 것이 아닌 초안으로 몇몇 기자들이 요청하는 바람에 참고용으로 배포했던 것』이라며『그 뒤 추고과정을 거쳐 표현 등을 순화했다』고 주장.
실제 유 의원은 1차 원고에서 많은 부분을 수정해 문제가 된 대목도 당초『국시를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했던 것을『반공이라기보다 통일』로 고쳤고, 뒷부분에 『나는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통일이 반드시 이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영원한 화해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통일』등을 추가. 그러나 뒷부분은 민정당 의원들이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마이크 중단으로 발언하지 못했다.
유 의원은 발언수정 요구가 있자 원고에 『나는 6· 25때 M1소총을 메고 공산당과 전투까지 한 반공투사』『지금 북괴가 침략해 온다면 제일 먼저 나가 싸울 것』등을 삽입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고, 김동영 총무가 14일 낮 3당 총무회담 직후 유 의원을 만나 수정사실을 확인하자 『대한민국이 주도하는…』라고 한 대목을 보이며 『수정했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는 것.
유 의원은 발언을 못한 부분에서도 칼잡이 부분은 빼 버렸고 기타 민정당 쪽에서 지적한 대목을 『대폭 표현순화』 했다는 주장. 유 의원은 본회의 직전에 내무위 전문위원 실에서 권정달 내무위원장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권위원장은 여권내의 강경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실정법 위반사실은 곤란하다』고 경고했고 유 의원도 어느 어느 대목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는 것.
유 의원은 원고를 다른 사람이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직접 썼다. 그것을 원고지에 옮겨 썼고 다시 발언내용으로 비서를 시켜 큰글씨로 옮겨 썼다. 1차 배포된 것은 원고지에 옮겨 쓴 것이다. 원고지 밑 칸의 한자음 토는 남 비서가 한문을 잘 몰라 써 준 것』이라고 답변.

<문제된 발언전문>
14일 하오 유성환 의원의 대정부질문 중 문제가 된 부분의 속기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국시를 반공으로 해 두고 과연 앞으로 다가올 올림픽 때 동구공산권에서 대거 참가하겠습니까. 또 우리의 무역이 모든 세계 지구 위에 있는 모든 나라들과 무역을 해야 되는 데 반공을 국시로 해 두고 있는 것이 과연 국익에 합당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6·25 때 M1소총을 가지고 가야산·수도산 형제 봉에서 공산당과 총격전을 한 반공투사이며 지금이라도 북괴괴뢰 정권이 침략해 오면 유성환이가 먼저 나가서 총 들고 싸우겠소. 나는 반공정책만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발전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예요.
그러나 국가의 이익을 거시적으로 볼 때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는 통일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강대국들의 한반도 현상 고착정책에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적화통일이냐, 확실히 얘기해」라고 민정당 석에서 야유)
적어도 분단국에 있어서의 통일, 또는 민족이라는 용어는 한 이념으로까지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먹고 자고 걷는 것, 국민이 존재하는 것, 국군이 존재하는 것 모두가 통일을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그 위에 위치가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통일원의 예산이 아시안게임선수 후원비보다 적은 것은 사실상 통일을 이 정부가 회피한 것이 아닙니까』(장내소란 마이크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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