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음담패설 이후 성폭행 경험 공유 확산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음담패설 녹취록이 성폭력에 저항하는 여성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가 2005년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저속한 속어까지 동원하며 여성을 성적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SNS를 중심으로 남성 우월주의 성문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캐나다 출신 여성 작가이자 SNS 스타인 켈리 옥스퍼드는 녹취록이 공개된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에 해시태그 ‘#NotOkay(성폭력은 괜찮지 않다)'와 함께 “여성들에게: 당신의 첫 성폭력 경험을 공유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옥스퍼드는 “성폭력은 단순히 통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공유하겠다”며 자신이 열두 살 때 버스 안에서 당했던 성추행 사실을 고백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옥스퍼드가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NotOkay를 단 트윗 2700만 건이 쏟아졌다. 배우 앰버 탬블린은 트위터에 “클럽에서 마주친 전 남자 친구가 나의 주요 부위를 만지며 들어올려 나를 클럽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한 여성은 “14살 때 한 남성이 나를 집으로 태워다 준 뒤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썼다. 또 다른 여성은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열 두 살이었고, 그는 감옥에 갔다”는 트위터를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녹취록 파문이 그의 대선 행보에 치명타가 됐을 뿐 아니라 성폭력 희생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이른바 '강간 문화(Rape Culture)'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간 문화’는 1970년대 등장한 페미니즘 용어로 성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리킨다. 미 페미니스트 단체 제3의물결재단의 에이미 리처드 공동 설립자는 "이번 움직임은 여성들이 '일상의 모든 트럼프들'에게 내는 목소리"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201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촉발된 ‘슬럿워크(SlutWalk·헤픈 여자 차림으로 걷기)’ 때와도 유사하다. 당시 토론토 요크대학 강연에서 경찰이 “성폭행 당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slut)’처럼 입지 말아라”고 발언했다가 세계적 시위로 번졌다. 슬럿워크는 미국·유럽·아시아 등 30여개 국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사회 운동으로 번졌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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