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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30분의「무법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엊그제 서울 시흥 동에서 벌어진 10대들의 집단난동사건은 범상한 일로 보아 넘길 수 없다. 칼과 도끼와 삽을 든 30여명의 청소년들은 닥치는 대로 부수고 찌르며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이들은 괴 성을 지르며 2km에 이르는 주변상가와 주택가를 무려 1시간30분 동안 헤집으며 20여 점포와 방범초소까지 부수었고 종업원 1명에겐 칼질을 해 중상을 입혔다.
공포에 떨었던 어떤 시민들은『무법천지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고 악몽의 순간들을 얘기했다.
치안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산간 오지나 외딴섬이라면 또 모르겠다. 명색이 수도 서울에서 그것도 심야 아닌 초저녁에 이런 불상사가 어떻게 빚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10대들의 광란이 어느 순간에 일어나 단발에 그친 것도 아니다. 마치 메뚜기 떼들이 들판을 휩쓸고 지나듯 했고 몇 명의 경찰관이 뒤늦게 출동했으나 손도 쓰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구경만 하는 꼴이 되었고 현장에서 범인은 한 명도 붙잡지 못했다.
경찰은 뒤늦게 조직폭력배들의 세력다툼으로 빚어진 사건으로 짐작하고 범인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국민들의 입장, 특히 피해자인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 10대의 광란의 원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수도 서울에서 어떻게 1시간30분 동안이나 그런「무법천지」가 연출되었는가가 문제다.
지난번 서울강남 서진 룸살롱 조직폭력배들의 칼부림에 의한 집단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국에 폭력배 일제 소탕명령이 떨어진 마당에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무슨 명분을 갖다 대도 납득이 안 된다.
어디 그 뿐인가. 며칠 전에는 서울에서 방범대원이 10대의 칼에 맞아 희생됐고, 대낮 주택가에서 가정주부가 피살되는 등 강력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치안이 있는지, 없는지 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이처럼 무방비 상대로 방치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외부의 도전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도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 같은 불안한 상태를 언제까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우선 경찰의 기능만이라도 제 구실을 하도록 운영과·체제의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범죄를 낳게 하는 사회의 제반 병인들을 도외시할 수 없다. 이 같은 사회 범죄를 진단해 함께 치유하는 사회 정책적 노력도 범행되어야겠으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범죄를 억제하는「기능의 공백」부터 메우는 작업이다.
우선 명령과 집행에만 매달려 있는 치안본부의 기능도 치안정책을 연구, 수립하고 일선을 지도, 감독하는 정책기관으로 체제개편을 해야 한다. 이번과 같은 집단 또는 다중범죄가 왜 일어나고 있으며 신종 범죄대책은 무엇이며 걸핏하면 살상하는 요즘의 범죄성향 등을 심층분석하고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기구로서의 면모를 확립해야 한다. 범죄의 예방은 고사하고 눈에 보이는 범인도 제대로 뒤쫓지 못하는 경찰은 그 방대한 규모가 부끄럽지 않은가.
치안당국은 무엇보다도 경찰이 경찰로서의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하루 빨리 신뢰를 쌓지 않으면 국민은 어디 마음을 기댈 데가 없다.
「무법천지」라는 말은「경찰부재」라는 말과 같다. 경찰은 그런 오명을 씻는 노력을 스스로 경주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한 경찰이냐는 질타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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