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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4) 하원에서 발해까지…동양사 5천년의 베일을 벗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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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감숙성 임하회족 자치주 화정현 남쪽27㎞의 깊은 산중에 있는 송명암에서 1년마다 대화아라 불리는 소수민족의 노래잔치가 벌어진다. 화아란 청해 감숙을 비롯해 황하상류 유역 각지에 사는 소수민족이 전하는 민간예능으로서 원래는 꽃을 사랑하는 즉흥노래를 말한다.
그러나 원초적으로는 이 화아는 <꽃>에서 이름을 빌어 봉건정치나 착취계급에 대한 통렬한 비판·풍자의 노래이며 압박당하고 박해만 받아온 민중의 즉흥적 노래형식을 빈 반항의 무기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화정현 송명암은 정상에서 구름을 굽어볼 정도의 높은 봉우리로 사면이 둘러싸인 깊은 산중의 경승지다.
송명암앞 5㎞지점 언덕 눈아래 골짜기의 길이란 길은 개미떼 같은 사람들의 행렬로 북적거리고 있다.
큰 주전자·남비를 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깔자리를 말아서 등에 묶어멘 사람도 있다. 닭을 몇마리 자전거 핸들에 매달고 끄는 젊은이도 있다.

<산에도 관객몰려>
음력 4월28일, 1년에 한번 열리는 7백년 이상 계속되고있다는 이날 대화아회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10만명이 넘었다.
이 화아회에 참석하는 것은 회족·사라(철납)족·퉁샹(동향)족·보난(보안)족, 그리고 한족까지 5개 민족. 그 태반은 감숙성내의 각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오지만 일부는 청해성·영하회족자치구·사천성 등 원격지의 참가자도 있다. 일종의 콩쿠르다.
언덕위에 설치된 10평정도의 무대를 둘러싸고 수천명의 관객이 밀치락 달치락 하면서 웃고 떠들며 소란스럽기 이를데 없다.
무대 앞의 관중도 대단하지만 넘치는 군중이 풀밭에서, 풀밭을 둘러싼 사방의 산 곳곳에서 웅성거린다. 바람을 타고 노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남녀 한쌍만이 아니라 직장·마을의 친구인듯한 남자 그룹, 가족 동반자, 동급생 또래의 처녀 등의 무리도 일제히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 그룹에서 노래하면 다른 무리가 뒤를 잇고, 그 노래소리를 뒤쫓듯 남녀의 합창이 이어져 아득히 눈아래 굽이치는 황하로 사라진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 긴 고난의 여정 끝에 이윽고 황하기슭에 안주의 땅을 발견한 사람들의 깊은 기도소리 같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백성중에서 마지막으로 토우(土)족을 이야기 할 차례. 지금까지 나온 퉁샹족 등 여러 민족이 이슬람교를 믿는데 대해 토우족은 티베트족과 마찬가지로 티베트불교, 이른바 라마교를 신봉한다.
토우족의 거주구역은 청해성 동부의 황수유역에서 감숙성 남동부에 걸쳐있다.
호조토우 자치현은 서령의 북쪽에서 약간 동쪽으로 쏠린 지역.
서령을 지나면 그곳은 이미 토우족의 거주지구로서 토우족 특유의 흙칠을 한 납작한 집들이 늘어서서 몇개의 마을을 이루고있다.
마을로 가는 길의 양쪽 적토에는 청과(티베트나소맥) 밭이 이어진다. 과거엔 유목민이었던 토우족도 지금은 오히려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토우족의 총인구는 13만3천명이며 그 중에서 1만1천여명이 감숙성에, 나머지 12만2천여명이 청해성에 산다. 토우족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 호조토우족 자치현이다.
토우족의 내력에 관해서는 토곡혼설, 타타르인(몽고족의 일종·중국북서부에서 동유럽에 걸쳐 거주한 기마유목민)설, 돌궐(중국북방에 거주한 흉노의 일종·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터키족 조상이 됨)설이 있는데 지금 토곡혼설을 취하는 근거가 될만한 사례가 몇가지 있다.
하나는 지명이다. 현재 호조토우족 자치현과 그 서쪽 이웃 대통현에는 토우족말로 토우혼이라 불리는 마을이 10여개 있다. 중국어로 이것을 토관, 또는 탁홍이라 표기하는데 이것은 모두 토우혼(토혼)의 전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토곡혼의 고토는 현재의 요령성 남부였다. 4세기초 흉노의 쇠퇴를 틈타 수령 토곡혼의 지휘하에 서쪽으로 이동하여 몽고고원을 넘어서 현재의 감숙성 남부에서 청해성 남동부로 이동, 그곳에 토곡혼국을 세워 중국과 중앙아시아와의 무역 중계로 번영했다.

<신랑 머슴살이 풍습>
그러나 토번(티베트)의 공략에다 동맹을 맺은 당왕조에도 공격을 당하여 7세기중엽에 멸망, 역사에서 사라진다.
취재반은 현성인 위해진의 동쪽 이웃마을 동구향의 토우족 가정을 방문키로 했다. 동구향은 기련산계에서 솟아 흘러 내러오는 물가에 별로 높지 않은 산을 등에 진 마을이다.
이웃마을에 시집간 딸이 근친(근친)오는「차오화차이」(교발재·53)씨의 집을 찾았다. 딸의 근친은 호이냥자(회낭가)라 불리는 토우족의 일반적 풍습이다.
시집간 딸이 한달 안에 신랑과 함께 친정에 돌아와 1주일간쯤 묵는다.
옛날에는 데릴사위 혼인이 토우족의 풍습이었다 한다. 신랑은 거액의 금품을 납채로 지불해야했고, 그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납채 대신 처녀집에 들어가서 몇년동안 노동을 한끝에 결혼할 수 있는 풍습도 있었다.
회낭가는 데릴사위 혼인이나 납채를 못하는 신랑감이 처녀의 집에서 몇년동안 머슴살이를 하던 과거의 풍습이 그대로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상오10시쯤, 「차오」씨 이웃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어 와글거린다.
각각 말을 탄 신혼부부가「차오」씨 집에 들어가는 것을 촬영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제지를 당했다.
문전에는「차오」씨를 비롯한 친족들이 늘어서서 쟁반에 받친 술잔을 권한다.
조그만 눈깔잔이지만 술은 놀랄 만큼 독하다. 한 모금 머금었더니 강렬한 알콜 냄새가 코를 콕 찌른다. 그것도 꼭 석잔만은 들어야한다. 중국어로 <경주삼배>라 하여 손님을 대접하는 토우족의 최고 예우다.
술은 청과로 만들고, 이름은<호조대곡>이라 한다. 중공에선 전국 각지에 증류주인 소주계통의 향토주가 있다. 그 상질의 것을<대곡>또는<특곡>이라 하며 이하<일곡><이곡>까지 등급이 있으며 값이 싸진다. <호조대곡>은 말하자면 최상급의 향토주.
알콜도수는<백분지칠십>으로 70%라 한다.

<「경주삼배」에 혼쭐>
도로에서 집대문에 이르는 길위에서<경주삼배>를 받고 안심했더니 웬걸 대문에서 재차 친족이 쟁반에 잔을 받쳐들고 기다린다.
문을 거쳐 뜰에 들어설 때, 뜰을 지나 방에 들어갈 때, 방에 들어가 항(항·방안에 온돌식으로 만든 한층 높은 부분)에 올라갈 때, 또 잔치자리에서 행복과 건강을 축원할 때, 그럴 때마다 <경주삼배>가 거듭된다. 더욱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은 집을 나갈 때도 똑같은 과정을 거꾸로 되풀이한다.
그러면 술을 못마시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가운데 손가락에 술을 찍어 공중에 세번 튀기면 <경주삼배>를 받는 셈이 되는데 가운데 손가락으로 술을 세번 튀기는 것은 티베트족이 혼례석상에서<불·법·증>의 삼보에 귀의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인 것이다.
신혼부부가 집에 들어오자 이윽고 이웃 남녀가 모여들어<안소무>가 시작되었다.
우선 원로가 노래 서두를 꺼낸다. 그에 맞추어 사람들이 뜰 중앙에 있는 화단 둘레를 합창하면서 춤을 추고 돌아간다. 양쪽 손을 벌리고 활처럼 몸을 뒤로 제쳤다가 숙이며 돌아가는 동작을 되풀이하는 상당히 격렬한 춤이다.

<안소무>는 토우족의 전통적 춤으로서 춘절이나 혼례 등 경사때 행해지며<오곡풍양, 육축흥왕(가축의 왕성한 번식), 전삼일가평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집안의 한 방에는 잔치자리가 마련되었다. 턱이 진 온돌 위에 양털로 짠 고운 색채의 융단이 깔려있다. 우리에게도 그 자리를 권했다. 신을 신은채 편한 자세로 주저앉는다.
잔치자리에 신혼부부는 나오지 않는다. 접대는 가족과 친족들이 모여서 한다. 보통 토우족은 장남이 가통을 잇고 다른 형제는 분가하며 부모는 막내아들 집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모두 이웃에 집을 두고 있다.
문제의 <경주삼배>뒤에 주인「차오」씨를 비롯한 몇사람이 노래를 한다. 멀리서 온 손님을 위로하며 많이 먹고 많이 마셔달라는 뜻의<환영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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