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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일에 더큰 보람"|선수촌 욕실청소 맡았던 주부봉사요원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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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6일간에 걸쳐 뜨겁게 달아오르던 아시안게임의 성화도 조용히 그 불꽃을 마감한 6일. 모두가 떠나버린 선수촌에서 마지막 뒷정리에 구슬땀을 홀리는 일군의 주부봉사요원들이 있어 눈길을 모은다. 선수촌숙소 욕실담당 66명이 바로 그들. 지난달 11일부터 8일까지 욕실청소를 도맡은 이들 주부교실중앙회 회원들은 용역조차 수월치않았던 이 분야에 순수자원봉사를 자청, 변기청소까지 마다않고 해낸 숨은 일꾼들.
2인1조로 상오9시부터 하오5시까지 1천3백70개의 욕실청소를 해내느라 온몸이 파스 투성이인데다 입술까지 부르튼 「마나님」들은 『국가의 큰행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는 긍지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며 오히려 만족스런 표정들이다.
오만선수숙소를 담당했던 이영주씨(39·서울강남구삼성2동140의32)는 『선수들이 수세식변기사용에 익숙치않아 바닥의 대변까지 치워야했지만 「아주머니 클린 넘버원」이란 칭찬이 모든 어려움을 잊게했다』고 말하기도.
이들이 가장 애를 먹은것은 수채구멍이 막히는 것. 욕실바닥에 수북이 깔린 체모와 화장지가 얽혀 브러시로 긁어내도 뚫리지 않는 통에 아예 손으로 긁어내야만 했다. 이라크선수숙소를 담당했던 이정숙씨(49·서울관악구봉천7동1606의3)는 『노린내등 특이한 체취 때문에 처음 며칠간은 밥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고 들려주고 『처음엔 의심을 많이하던 그들이 점차 「안넝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과자까지 건네줄때는 눈물이날 지경이었다』고 회고.
하루평균 40개의 욕실청소를 해내느라 점심시간1시간 외에는 동료끼리 앉아서 한담할 시간도 없을정도. 『그러나 「오리지널 자원봉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선수들도 욕실을 가급적 깨끗이 사용하려고 신경을 써줘 점차 일이 쉬워졌다』고 전은자씨(36·서울종노구창성동138의2한국선수촌담당)는 오히려 고마와한다.
선수들의 침구사용도 갖가지. 『파키스탄선수들은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바닥에서 잠을 자는가하면 이라크선수들은 베개가 너무높다고 아예 치워버리더라』고 윤정혜씨(54·안양시석수1동 동삼빌라1동309)는 들려준다.
첫날 청소하러 들어가는데 7명의 남자들이 모두 웃옷을 벗은채 있어 몹시 당황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영자씨(43·서울 서대문구연희3동344의223·스리랑카선수숙소담당)는 『나중에 그들이 여기서 살고싶다며 부러워했을때 한국인이란 것에 긍지가 느껴졌다』며 웃는다.
이들이 가장 고마워하는 것은 가족들의 협조. 추석등 명절이 끼여있는데다 휴일도 많은 이 기간에 시부모님은 물론 남편 고3입시생까지 모두 『큰일을 맡았으니 집안걱정말고 나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
이제 용역회사에도 취직될 정도로 「욕실청소전문가」가 된 이들은 『이번 일을 발판삼아 88올림픽때도 맡겨만 준다면 뭔가 보여주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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