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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節稅'위해 강남으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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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는 적어도 매년 두차례 이상 서울 강남으로 이사 갈 결심을 한다. 무엇보다 건물분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드는 6월과 토지분 재산세(종합토지세)고지서가 배달되는 10월이 되면 어서 빨리 강북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30년을 훨씬 넘도록 강북에 머물러 왔으며 여전히 '절세'라는 이유를 내세워 강남으로 갈까말까를 곰곰이 따져보게 된다. 그까짓 재산세 때문에-라는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강북 '중과세' 현상이 도대체 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더욱 강남 갈 생각을 억제하지 못한다.

나의 경우 건물분 재산세는 강남의 같은 시세 아파트나 주택에 비해 지역에 따라 18배 정도나 비싸고 토지분 재산세는 15배에 이른다. 어느 누구나 해마다 이 같은 과세 내역을 통보받는다면 무리해서라도 강남으로 갈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소득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유럽의 일부 복지국가 전문 직업인들이 조국을 등진다는 외신을 접할 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하고 시답지 않게 여겼던 나 자신이 재산세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재산세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화가 치미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어느 지자체장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각 구청장들도 재산세 과표 결정권을 갖는다. 지방세법이 부여한 고유권한이다. 지난해 정부가 국세청이 정한 3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재산세 과표 인상 방안을 추진했을 때 강남의 서초.송파구는 이를 거부했으며 강남구는 뒤늦게 소폭 반영했다.

올해도 강남의 여러 구청장은 재산세 가산율 제도 도입을 거부했다. 그들은 선거를 의식해 지역 여론의 지지도에 온 신경을 쏟고 있으며 과표인상을 더욱 두려워한다. 그러나 재산세를 둘러싸고 강남북 간 또는 지역 간 불균형이 시정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재산세 고지서가 발급될 때마다 서울 강북의 각 구청에 민원이 쇄도하는 것도 이제 연례행사가 되었다. 정치는 누굴 위한 것이며 공평과세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답변을 우리는 입법부와 행정부 및 각 지자체장에게 엄중히 요구해야 한다.

1960~70년대식 재산세 부과방식은 매년 발생하는 조세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 답습되어 왔다. 강남북 간 또는 지역 간 과세 불균형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는 제도'때문이라는 정부의 설명에 우리는 이미 질려 있는 상태다.

건물이나 토지 가치에 대한 변화를 지방세법이 반영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제도와 절차를 마련하는 데 정부는 더 이상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지자체장들의 과표결정권을 중앙정부로 옮기는 문제와 미실현 소득에 대한 보유과세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70년대 한강 남쪽에 강남이라는 또 하나의 서울을 개발할 때 정부는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취득세.재산세.도시계획세.소방세를 면제해주고 건축업자들에게도 각종 세제혜택을 부여했다.

그 위에 주요 정부기관 이전과 교육.의료.체육.유통.유락, 각종 교통 터미널 시설 등을 넣었으며 이를 입안하고 추진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기업인들이 오래 전부터 강남의 기득권자로 터를 잡아왔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강남북 간 왜곡현상을 시정하는 데는 이들의 이해와 참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70~80년대에 강북을 탈출해 강남으로 이동했듯 제2의 강북 탈출이 이어질지 모른다. 서울시의 강북 개발의 꿈도 균형 잡힌 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최철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