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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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주대회의 열기로 그 동안 정치는 표면상 휴전상태였다. 야당의 「당분간 헌특 불참」 결정 등 곡절은 있었지만 금메달의 함성에 묻힌 채 국민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 감동과 열광을 식히면서 냉철하게 당면한 정치현실을 타개해야할 과제 앞에 서게 되었다. 정기국회는 정상활동에 들어가고 개헌논쟁도 어떤 형태로건 가열될 참이다.
현재로서는 가을 정국이 순탄하게 넘어 가지는 못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야당은 양 내외를 통해 개헌문제와 국회운영을 연계시킨다는 전략이며 정부·여당은 이에 대해 강경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어디에서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여야의 대결 양상은 마치 정면충돌을 향해 돌진하는 「두개의 기관차」꼴이다. 이대로 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국민들의 심경은 실로 우울하고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워커」 주한미대사가 말했다는 『20년 후퇴설』 이나 김경원대사의 『10년 후퇴설』 이 같은 날 발설된 배경이나 의도가 무엇인지 우리로서 알 수는 없다. 과연 외교관의 신분으로서 그런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도 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와 같은 불행한 상황이 닥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10억 인구의 중공을 따라 잡 뻔 했다는 감격으로 술렁대고 있다. 아시아대회에서 보여준 한민족의 우수성과 저력을 나라안팎에 한껏 자랑해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다.
우리 민족의 저력과 가능성이 이처럼 뽐낼 만 하거늘 유독 정치분야만 후진국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부끄럽고 통탄할 노릇이 어디 있겠는가.
스포츠가 페어플레이 정신과 함께 화합과 전진을 다지기 위한 행사라면 정치는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한다. 대회의 성과를 국민공유의 자산이 아니라 자당·자파의 이익에만 써먹으려는 생각은 없는지, 스포츠에서는 공정 공명을 주장하면서 정치에서는 그런 미덕을 애써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말로는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면서 실제로는 화합 전진에 장애가 되는 행동은하지 않았는지, 심각하게 자성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만약에 이번 대회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정국이 혼미 속을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큰소리를 내고 깨진다면 대회를 통해 세계에 떨친 민족의 저력과 가능성 또한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다는 것은 명고관화한 사실이다.
파국이 닥쳤는데 어느 한쪽만 살고 다른 한쪽은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이상의 계산 착오는 없다.
정치가 후퇴를 하는데 다른 분야가 발전을 한다고 여긴다면 그것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정기국회가 재개되면서 11일께는 3당대표회담도 열리리라고 한다. 신민당의 불참선언으로 중단 된 헌특의 조기정상화 방안에 관한 막후절충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제발 그런 움직임들이 좋은 결실을 맺어 개헌문제가 순리대로 풀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사회가 발전하고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질수록 계층간 이해가 다양해지고 다원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추세다. 다원화에 따른 대립과 갈등,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약간의 혼란은 어쩔수 없는 사회적 부담이다.
정치는 바로 그와 같은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조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지 갈등을 깡그리 없애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야 모두 민주화를 표방하는 이상 이러한 인식의 정립은 긴요하다.
88년까지의 정치일정이 참으로 중대하고 올 가을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우리의 정치능력을 시험하는 중요시기라는 점에는 이논이 있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도 단념을 하거나 중단을 한다면 정치인으로서 책무포기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아주대회가 남긴 『하면 된다』 는 정신은 여야정치인 모두가 가슴깊이 되새겨야할 교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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