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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내수 차별’에 침묵하는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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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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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산업부 기자

현대자동차는 홍보에 발 빠른 회사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제네시스 G80스포츠 사전계약 실시’ ‘코리아세일페스타(KSF) 5000대 추가 할인’ ‘태풍 피해복구 성금 50억원 전달’ ‘상용차 가을맞이 특별 프로모션’ 같은 보도자료 10여 건을 냈다. 하지만 정작 언론이 기다리는 보도자료는 도착하지 않았다. ‘리콜(결함보상) 내수 차별’ 이슈에 대한 현대차의 공식 입장 말이다.

지난달 말부터 한 현대차 엔지니어가 언론을 통해 쏟아내기 시작한 제보가 자동차 업계에선 화제다. “현대차가 2011~2014년 미국에서 생산한 YF쏘나타 시동꺼짐 현상 등과 관련해 지난해 9월 47만 대를 리콜했지만 같은 엔진을 단 차를 판 한국에선 결함을 확인하고도 리콜하지 않았다”는 게 제보의 핵심이다. 국제 리콜 스캔들로 번질 수 있는 문제인데도 현대차는 보름 넘게 묵묵부답이다.

현대차는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라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리콜 내수 차별 관련 보도는 인터넷 포털에서 여전히 ‘많이 읽은 기사’다. 회원 수가 18만 명에 달하는 인터넷 자동차 카페 ‘보배드림’에선 2주 이상 ‘베스트 글’로 꼽혔다.

그런데 의혹을 확산시킬 뉴스가 또 불거졌다.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에 따르면 현대차는 YF쏘나타 엔진에 결함이 발견됐다는 소송을 제기한 미국 소비자들에게 수리비 전액을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차량 소유자 88만5000명에 대한 무상점검과 보증기간 연장을 약속했고 이미 차량을 수리한 소비자에게도 수리비와 렌터카 비용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리콜과 별개로 추가 보상까지 나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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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에선? 감감무소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에서 문제가 된 YF쏘나타와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같은 엔진을 쓰는 건 맞다. 하지만 미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에만 생기는 공정상의 문제다. 한국에선 불량률이 현저히 떨어져 리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내수 차별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현대차는 “내수 차별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리콜 문제가 터졌을 땐 “내수용은 해외 판매용과는 다르다”고 대응한다. 도대체 뭐가 맞는 얘기인가.

현대차는 한국을 글로벌 자동차 ‘빅5’로 일으켜 세운 회사다. 하지만 한국인의 유별난 현대차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내수 차별 의혹에 더 떳떳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고 공식 해명하는 게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고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현대차 스스로 묵묵부답하면서 불필요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회사 내킬 때만 하는 홍보는 소통이 아니다.

김 기 환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