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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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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오는 88년부터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가 개업하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개업 전에 3∼5년간 지방병원에서 근무경력을 쌓도록 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나 전문의가 거의 없는 농어촌 지역에 의료혜택의 수준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88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중인 의료보험의 전국확대 실시를 앞두고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형편에 있다.
지난 84년 말 현재 우리 나라 총 의료기관수는 1만3천7백여개소에 이르고, 병상수는 5만8천이 넘고 의사 1인당 인구수는 1천4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80%이상이 도시에 편중돼 있으며 병상수만 해도 도시지역은 1만 명당 20·6개인데 비해 농어촌 지역은 6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농어촌 지역에서는 변이 나도 간단한 1차 진료만 가능하며 인근 도시의 큰 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옮기려면 불편한 교통수단 등으로 큰 곤욕을 치러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어촌에 대한 의료혜택의 보장으로 도시와 균형을 맞추는 것은 시급하고도 절실한 일이다.
그러나 전문의사의 개업허가 조건으로 일정 기한의 지방병원 근무를 의무화하는데는 심상찮은 문제들이 있다. 우선 이 방침에 대해 대한의학협회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 위배」 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의료인이란 국민 건강의 보호와 질병의 치료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공인이다. 그러나 이들이 거의 10년에 이르는 기나긴 수련기간동안 국비의 보조를 받은 것도 아니며 지방병원 근무에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강제로 근무지역을 제한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한가지는 지방병원에 전문의만 배치하는 것으로 전문의료기술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의료는 청진기와 약만으로 되지 않는다. 각가지 첨단의료 장비와 검사설비가 완비되지 않고서는 질병의 치료는커녕 진단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현대적 질병이다.
이러한 진료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시골병원에 고도의 수련을 거친 전문의가 근무한다해도 그 기술은 발휘되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결과 밖에 안된다. 더군다나 길고 어려운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전문의가 수입이 적고 생활환경도 불편한 지방에 가서 자비로 거액의 의료장비를 갖추면서까지 개업을 하라고 한다면 누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이미 현대적 설비를 갖춘 지방병원들도 낮은 소득수준 때문에 고급의료수요가 없어 파산으로 문을 닫는 실정이다.
여건은 개선하지 않고 법만을 고쳐 전문의사를 억지로 근무시킨다 해서 농어촌 의료혜택의 강화라는 근본 목적이 달성되리라고 보는가. 이에 앞서 정부는 지방의료기관의 설비와 장비를 현대의료기술의 발휘와 적용에 알맞게끔 개선해야 하고 전문의가 흔쾌히 근무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하는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정부의 투자는 전무한 채 의료인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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