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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 각 부처간의 비 협조와 사전조정부재로 막대한 예산낭비와 국가재산의 손실을 빚은 사실이 밝혀졌다.
경제기획원이 내놓은 「86년 상반기중 정부 주요사업 실사보고서」 에 나타난 낭비사례를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이럴 수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7천만원을 들인 귀중한 장비가 6년째 사장되어 있는가 하면 멀쩡한 길을 두 번, 세번 파헤쳐 예산의 낭비는 물론이고 시민생활의 불편까지 끼쳤다.
더구나 같은 수도권에 있는 고양군의 송수관 시설을 15억원이면 가까이서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을 무려 40억원이나 들여 의정부에서 연결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일은 전국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그것도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에 경제기획원이 지적한 사항들은 감사원 감사에서도 연례행사처럼 지적되어온 병폐였다.
그같은 해묵은 병폐들이 한두번도 아니고 수없이 지적되고 시정이 촉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이유를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예산은 한마디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 공적 재화다. 하늘에서 그저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샘처럼 저절로 솟아난 것도 아니다. 이처럼 귀중한 거액의 예산을 낭비해 날려 버리는 행위는 그것이 고의가 아닌 과실이라 해도 일종의 범죄행위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산을 낭비한 관계공무원에 대해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내 행정책임 외에 형사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예산의 낭비가 행정기관간의 비협조 때문이었다면 의당 유기적 협조체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를 밝혀내 두번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했어야 옳다. 행정기관간의 업무를 통합·조정하고 교통정리를 원활히 하는 기구는 국무회의외에도 정부안에 적지 않게 있다.
이들 공식·비공식 기구들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했다면 15억원으로 끝낼 일을 40억원이나 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뻔한 과오들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국민의 편」 이라는 사명없이 편의와 적당주의로 공무를 집행했다는 얘기밖엔 안 된다.
예산은 쓰기만 하면 되고 모자라는 예산은 걷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관료폐습이 부처간의 비협조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고질적 병폐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지만 하이웨이를 달려보면 때때로 『당신의 세금이 일하고 있다』(Your tax is working) 는 안내판을 보게된다. 그 안내판의 숨은 뜻은 조금만 더 하이웨이를 달려가 보면 곧 알게된다.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공직자들은 혈세로 이루어진 예산에 대한 인식이 철두철미하다.
이번 경제기획원의 보고서는 하나의 보고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부기관간의 비협조가 왜 일어났고 시정을 위한 근본대책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찾아내 두 번 다시 낭패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를 기하고 관계자에 대한 엄중 문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도 이제 자기가 낸 세금을 함부로 쓰는 정부와 공무원에 대해 언제까지나 무작정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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