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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야? 구두야? 요상한 ‘블로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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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링 쉬운 뒤축 없는 신발

올 가을 ‘가성비’를 제대로 구현하는 패션 아이템이 있다. 바로 뒤축 없는 신발, ‘블로퍼’다. 앞 절반은 로퍼, 뒤 절반은 슬리퍼 모양으로 올 봄 거리에서 하나둘씩 눈에 띄더니 무더위를 거쳐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까지도 쉽게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톡톡 튀는 디자인에다 적당한 노출 덕에 계절을 넘나드는 단 하나의 구두가 되고 있는 셈. 이제 여름엔 샌들, 겨울엔 부츠라는 공식은 잠시 잊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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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컬렉션에 꾸준히 등장하는 블로퍼.소재나 장식면에서 계절을 넘나드는 디자인이 많다. [사진 퍼스트뷰 코리아]

앞은 로퍼, 뒤는 슬리퍼의 반전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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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퍼를 신을 때는 넉넉한 실루엣에 종아리에 걸치는 길이의 하의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이어가는 게 포인트다. [사진 마리메꼬]

2015년 2월 구찌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데뷔 무대에 요상한 신발이 등장했다. 앞쪽은 브랜드의 시그너처나 다름없는 홀스빗 로퍼 그대로였지만 뒷부분은 영락없는 슬리퍼였다. 안쪽으로는 캥거루털까지 달려 있었다. 그 반전의 신발은 쇼가 끝나자마자 단박에 화제가 됐다. 패션 잡지나 인터넷에서 앞다퉈 소개됐고 알렉사 청, 시에나 밀러 같은 패셔니스타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이 신발을 신고 인증샷을 올렸다.

이름도 생겼다. 처음에는 ‘백리스 로퍼(Backless Loafer)’ ‘슬라이드 뮬(Slide Mule)’ 등으로 불렸지만 유행 조짐이 보이자 재빠르게 신조어가 나왔다. 백리스(Backless)·로퍼(Loafer)·슬리퍼(Slipper)를 합친 ‘블로퍼(Bloafer)’다.

이후 블로퍼의 존재감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2016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발렌시아가·보테가 베네타부터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톱숍·자라·H&M 등까지 너나없이 블로퍼를 선보이더니 이제는 네타 포르테나 W컨셉트 같은 국내외 온라인숍에서도 머스트 해브 1위 아이템으로 꼽힌다. 디자인의 변주도 다양해서 컬러풀한 가죽은 물론 모피 장식, 주름이 잡힌 실크 소재도 등장한다. 화려한 꽃무늬나 구슬 장식의 블로퍼로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한다. 질질 끄는 싸구려 신발이 아닌, 우아한 하이힐만큼이나 제대로 지갑을 열 만한 구두로 변신시킨 셈이다.

최근에는 가을에 접어들며 계절을 반영한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스웨이드나 벨벳 소재의 블로퍼가 대표적. 여기에 깎은 양털이나 퍼로 일부를 장식해 따뜻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 뒤축을 일부러 접어 신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제품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스타일링 쉽고 사계절 내내 신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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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블로퍼들. ①슈콤마보니 ②레이첼 콕스 ③카렌 화이트 ④구찌 ⑤왓 아이 원트 ⑥펜디 [사진 각 브랜드, W컨셉]

반짝 유행일 줄 알았던 블로퍼가 사랑받는 이유는 확실하다. 다양한 활용도다. 슈즈 디자이너인 ‘슈콤마보니’의 이보현 이사는 “데님·미디스커트·와이드팬츠 등 다양한 아이템과 짝지을 수 있다”면서 “맨발이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드러나 사계절 내내 신을 수 있는 구두”라고 설명했다. 똑같이 뒤가 트였더라도 스타일링이 제한적인 하이힐 뮬이나 슬링백(뒤축을 끈으로 고정하는 신발)과 달리 격식을 갖춘듯 하면서도 동시에 캐주얼한 느낌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시각적 효과도 있다. 롯데닷컴 패션잡화팀 이현진MD는 “발꿈치가 뒤로 드러나 아무래도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다 멋스러워 보이려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하의와의 균형감이다. 길이는 무릎과 발목 사이에 걸쳐지고, 볼륨은 어느정도 있는 게 낫다. 가령 초미니스커트나 레깅스형 바지는 웬만하면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송선민 스타일리스트는 “신발이 지니고 있는 여유로움을 전체적인 옷차림에 그대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라며 “가능한 단순한 실루엣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살려 로퍼의 클래식한 멋을 살리면 좋다”고 말했다.

좀더 튀는 스타일링을 원한다면 양말이 해법이다. 단, 어떤 양말인가가 중요하다. 짜임이 굵으면서 느슨한 니트 소재라면 베스트. 쫀쫀한 면 양말은 절대 피해야 한다. 또 한낮엔 아직도 더운 초가을에는 살이 비치는 스타킹 소재의 양말을 흘려내려 신는 것도 방법이다. 송 스타일리스트는 “어떤 경우에도 발목을 살짝 덮는 길이를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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