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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 비싼 건 100만원, 리허설 못 해 확인 또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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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캔버스가 하늘이라면, 물감은 불꽃이다. 오는 8일 한강 여의도 가을밤 하늘을 수놓을 ‘서울세계불꽃축제’ 얘기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을 그리는 ‘화가’가 한화 불꽃 프로모션팀의 불꽃 디자이너 윤두연(32) 대리다. 불꽃 디자이너는 관객의 특성을 감안해 행사 콘셉트를 정하고 불꽃 모양을 디자인한다. 음악을 선곡하고 편집한 뒤 불꽃과 어울리도록 배치하는 것도 불꽃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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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연씨는 “불꽃은 화려하지만 불꽃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한화]

2012년부터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총괄 디자인한 윤 대리는 “불꽃 디자이너는 ‘뮤지컬 감독’ 같은 종합예술가다. 올해도 100만 명 넘는 관객이 내가 연출한 불꽃을 즐길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한화 불꽃 디자이너 윤두연씨
8일 여의도 불꽃축제 총괄 디자인
하나하나 꾸미고 음악 선곡까지
“불꽃쇼 위해 지방 출장 1년에 50번”

이번 불꽃축제는 올해로 14회째다. 1시간여 동안 한국·일본·스페인 대표 불꽃팀이 참여해 10만여 발의 불꽃을 쏘아올린다. 윤 대리는 한국팀 불꽃에 하나하나 고유 주소를 붙여 언제, 어떻게 터질지 조율한다. ‘10번 6인치 스마일 불꽃 3발을 1분28초에 점화시켜 1분32초에 보이도록 한다’는 시나리오를 짜는 식이다. 이번 축제 테마는 ‘마법(magic)’. 그는 “불꽃이 없는 마을에 마법사가 찾아와 불꽃을 선물한다는 내용이다. 불꽃과 내레이션·영상·특수효과를 더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연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불꽃은 찰나지만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다. 포로 쏘는 불꽃은 동그란 박 모양으로 ‘연화(燃火)’라고 부른다. 연화 안에 불꽃으로 터뜨리고 싶은 모양을 수작업으로 디자인해 넣는다. 예를 들어 ‘웃음(^ ^)’ 이모티콘을 만들고 싶다면 나트륨을 여러 화학제와 섞어 웃음 모양으로 배치한 다음 도화선과 화약, 그리고 쏘아올리는 추진제를 종이로 감싸 넣는다. 그는 “한 발에 비싼 건 100만원까지 하기 때문에 ‘리허설’이 불가능하다. 사전에 확인, 또 확인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2009년 한화에 입사한 그는 매년 한화가 주최하는 전국의 불꽃축제를 40~50개씩 총괄 디자인한다. 축제가 휴가철이나 연말연시에 몰린 만큼 남들 쉴 때 제대로 쉬기도 어렵다.

“지방 출장을 1년에 50번씩 다니곤 했습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모텔 숙박비로 가득 찬 적도 있다니까요. 화약을 다루다 바지를 태운 적도 많고요. 바다에 배를 띄워 불꽃을 쏘는 부산불꽃축제 땐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빠진 적도 있으니 일이 참 거칠죠.”

하지만 그는 “불꽃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불꽃 디자이너를 계속 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일본 오마가리 불꽃축제는 100년,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불꽃축제는 7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는 “외국에선 불꽃축제를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대우하는데 한국에선 축제 끄트머리에 분위기를 띄우는 정도로 여겨 안타깝다”며 “불꽃에 조명·레이저·영상을 결합한 종합예술 면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의 불꽃쇼를 세계로 수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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