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동북아서 미 고립 획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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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소련은 시베리아와 동아시아 쪽에 큰 관심을 쏟고 있읍니다. 지금까지 이룩한 군사력 증강을 바탕으로 이제는 이 지역 국제정세에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읍니다.』
12일 하오 일해연구소(이사장 김기환)에서 있었던 최근 동북아의 전략균형-현황과 전망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한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소장 로버트·오닐 박사는 지난 7월말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발언으로 미루어 소련이 동북아시아에 종래보다 더 정책의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오닐 박사는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발언으로 소련의 아시아정책이 근본적으로 방향전환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고 그의 발언은 미소전술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오닐 박사는 고르바초프가 중소 관계개선을 위해 제의한 몽고로부터의 5개 사단철수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소련의 극동아시아 군사력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설령 소련군이 몽고 밖으로 철수했다해도 우수한 수송장비와 통신장비를 갖추고 있어 몇시간 안에 다시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오닐 박사는 이어 『소련이 북한과의 관계를 밀착시켜 동북아 정세를 긴장시키는 것은 미·중·일의 관심을 한반도에 묶어 두려는 전략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닐 박사는 그러나 『소련이 동북아지역에서 대 일·대 중공 화해교섭을 통해 미국을 이 지역에서 고립시키려 하기 때문에 북한에 SS기, SS·23 미사일 같은 전략무기를 제공해 일본과 중공을 긴장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닐 박사는 또 소련이 이 지역에 최신예 고성능 무기 등을 계속 배치하고 있으나 『SS-20 미사일 등 전략 미사일의 증강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는 이 지역의 전략 상황이 유럽쪽과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의 아시아 안보회의 구상에 대해 오닐 박사는 『브레즈네프가 70년대에 제안한 것과 내용면에서 조금 다른 것 같으나 미국을 동북아에서 고립시키려는 목표를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밖에 오닐 박사가 진단한 동북아 국제정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공의 변화>=중공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경제개혁이다. 등소평의 정책은 현대화를 위한 바이블과도 같은 것이다. 중공이 대 일·대 유럽 외교를 적극화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공의 군사 현대화는 현재 우선 순위에서 밀려있다. 중공은 군사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미국에 의존해 이 지역에서 세력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중공의 대소관계는 당분간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다. 중공은 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 발언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소련을 믿고 있는 눈치는 아니다.
오히려 중공의 대소관계는 중공의 경제발전속도가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50∼60년대와는 달리 공개적으로까지 북한의 체제와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한반도정세>=소련이 북한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소련정책의 변화이며 흥미있는 새로운 사례다. 소련은 이와 함께 한국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동북아 정세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북한만이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공군력과 해군력의 증강을 계속하고 있고 군사력을 휴전선 부근으로 전진배치 시키고 있다.
한국의 안보는 동북아 안보에 긴요하고 세계의 세력균형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방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북한이 테러 등 공격적인 전략으로 나오면 한국은 기습사건에 대비해 예방전략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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