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요구, 일리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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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교관계 6개 법령의 개폐는 불교계뿐 아니라 시대적 요청이 되고있다.
최근 조계종의 전국 승려대회가 자주선언을 통해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사회에 주의를 환기한 계기가 되었으나 태고종 등 불교의 각 종단은 그 동안 대 정부건의를 통해 불교재산 관리법 폐지를 요구해 왔다.
불교관계 제 법령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불교재산 관리법은 1962년 계엄아래 국회의 정상적 기능이 정지된 상황에서 최고회의가 제정한 것이다.
이 법의 제정 배경에는 물론 비구·대처의 불교분쟁으로 숱한 불교자산이 손실되고 사찰경내의 각종 위락사업 등으로 사찰환경이 크게 황폐해진 원인도 있었다. 사실 한때는 불교문화재의 유실을 우려해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도 컸다.
불교재산은 불교인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시각도 작용해 승려들의 관심 밖에서 방치되어온 민족문화재를 국가가 보호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러나 24년이 지난 오늘 그와 같은 법은 결국 하나의 종교단체에 정치권력이 개입함으로써 종교자유를 위축시키고 그 발전에도 장애가 된다는 부정적인 측면의 비중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실상 불교재산 관리법은 우리 헌법 19조의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조문에도 맞지 않는다.
그 법의 원래 취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사찰이나 불교단체의 등록에 대한 규정, 허가사항에 대한 규정 등을 두어 불교의 종교 내적 활동마저 감독, 통제해 왔다.
불교단체의 관할청은 정부이고 주지와 대표임원은 취임과 동시에 『지체없이 문공부 장관에게 등록하여야』하며, 『미등록 대표자에 대해서는 해임으로 간주한다』는 규정까지도 있다.
이는 분명 종교의 자유 원칙에도 걸맞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종교는 제외해 두고 오직 불교단체와 사찰에 대해서만 그런 규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평등원칙에도 저촉된다. 정·교 분리원칙과도 거리가 있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뿐더러 그 법은 불교재산을 완전히 동결함으로써 불교가 다른 종교처럼 사회복지나 교세확장을 위한 목적사업에 재산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막아 놓았다. 크게 보면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과도 상충되고 불교의 자율성을 묶어놓는 결과가 되었다.
불교계는 이를 1911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편의상 한국불교를 억압하고자 만들었던 사찰령의 잔재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 그 법의 개폐가 고려되는 시점에서 유의해야 하는 것은 그 법의 폐기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불교종단들과 충분히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관리법이나 공원법 등도 모두 입법의 당초 취지는 정당한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교의 종교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되고 있다는 불교계의 호소도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특히 사찰을 수도도량이 아니라 놀이터로 규정하는 인상이 있는 공원법의 입장료 조항엔 협의조정도 있어야할 것이다.
불교의 자주선언이 분쟁이나 갈등대신 평화적이고 법적인 개선과정을 통해서 보완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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