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장인정신이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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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술에 있어 80년대라고 할때 흔히 그것은 혼란에 찬 가치의 시대로 표명된다. 확실히 80년대는 그 이전의 어떠한 시대에도 엿볼수 없었던 활기에 찬 혼란이 지배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70년대까지의 미술이 단선적이고 계기적인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 반면 80년대는 복선적이고 비계기적인 것으로 드러나는데 그 요인이 있다. 미술계 내부적인 사정으로 본다면 폭발적인 미술인구의 증가가 다양한 속성의 혼재를 가져올 수 있었던 원인으로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미술지망생들의 수는 어느덧 미술계 내부구조의 가장 강렬하고 실질적인 변수로서 작용되고있다.
과거 신인등용의 길이 국전이란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이루어졌고 그러므로 해서 국전을 중심으로 한 질서가 한동안 미술계를 이끌어 나왔으며 상대적으로 국전세력권에서 벗어난 재야세력권의 형성이 좋든 나쁘든 미슬계를 두개의 축으로 하는 밸런스형성에 이바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는 바야흐로 이같은 구조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면서 복잡한 내역을 띠어가고 있다. 경험이 없는 신진 미술가들의 대량 화단영입은 대단히 활성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하지만 한편으론 위태로운 현상을 유도해내기도 한다.
부정과 도전이 혁신과 발전을 가져온다는 역동적 문화현상을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러한 현상이 건강한 발판에서 구축되고 진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심히 우려되고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부정과 도전이 우리미술이 지니고 있는 낡은 가치를 극복해주는 것이 못되고 오히려 정체현상을 가져오고 있다는데서 그 심각성은 더하고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개인전·단체전·공모전등을 통해 엿볼수 있는 가장 드러난 표면적 현상은 미술이 갖는 본질적 구조의 파괴현상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어설프게 파괴하려는 데서 일어난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새로운 것이란 신기한 것, 충격적이란 사실만을 강조하여 기괴하고 혐오적인 것을 통해 눈을 끌려는 심리작용이 의외로 우리주변에 범람하고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불구적인 탈출현상이다. 그래서 일부러 기괴하게 그리거나, 어설프게 그리거나, 아니면 잘못 그리기의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의 미술이 자유분방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70년대 미술이 갖는 고답적인 정신주의나 구조적인 자기성찰에 비해 훨씬 열려진 의식에서,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데서 그 요인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고있는 느낌을 다분히 주는 것은 특히 국제 여러나라의 오늘의 미술과 비교해볼 때 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진정한 자유가 아닌 방종현상은 갑작스레 찾아온 자유화물결에 쉽게 편승됐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으나 더욱 복잡한 사회적·현실적 모순과 좌절에서 유발될 수 있는 심리적 도착현상에서도 그 요인을 점검할수 있을 것같다.
미술계로 압축해서 그 원인을 살펴본다면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미술계 풍토에도 문제가 있지만 오늘의 미술교육자체에 그 주인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비단 미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형식주의적인 교육의 틀은 건전한 상상력의 진작이나 장인적 기품의 철저함도 장려하지 못한채 어중간한 상태에서 머물고 있을 뿐이다. 철저하게 장인적 수련과정을 밟든가 아니면 철저하게 분방한 분위기에서 창조적 열의를 가다듬게 하든가 두 방향에서 우리미술을 올려놓고 성찰해볼 시점에 와있지 않나 생각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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