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소기업 지원금 풀어봐야…‘빨대효과’ 아니면 ‘산소호흡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기사 이미지

2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대회의실에서 대·중소기업 간 금융격차를 주제로 보수·진보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홍재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원승연·우석진 명지대 교수·장하성 고려대 교수·이종욱 서울여대 교수·이상빈 한양대 교수·한종관 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경영혁신연구원장. [사진 김성룡 기자]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탓에 중소 하도급 업체는 덩치가 커져도 수익성은 나빠진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금이 대기업으로 흡수되는 빨대효과(straw effect)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수·진보 합동토론회 정부 질타
매년 15~16조 줘도 어려움 여전
실물 격차가 금융 격차로 이어져
중기 신용 평가 방식도 보완해야

2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진보 측 발제자로 나선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우 교수는 “정부의 자금 지원이 일시적으로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지만 대기업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거나 한계기업을 연명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금융시장에서의 대·중소기업 격차’를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주최하고 중앙일보·한겨레가 후원했다.

참석자들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부의 중소기업 금융지원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 교수는 “정부가 매년 15조~16조원을 지원해도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느낀다면 정책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원을 중단하는 이력관리 및 졸업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수 측 토론자로 나선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정부에는 공무원의 관점으로만 보는 관치 전문가가 너무 많다”며 “고금리·고수익 채권시장 등 중소기업이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성이 높은 코스닥 기업에 투자가 몰리듯 대출시장에도 건전한 중소기업이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자는 얘기다.

참석자들은 대·중소기업 간 금융격차의 주된 원인이 실물 격차에 있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실물에서 발생한 격차가 신용 격차로 이어지고, 그 결과로 금융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금융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간 불공정 관행을 없애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재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의 생산성과 신용등급에 있기 때문에 금융·금리 고민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보수 측 발제자인 이종욱 서울여대 교수는 “중소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신용등급을 쌓을 수 있는 인큐베이팅 보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꽃에 물을 주듯 7~8년간 필요한 자금만큼 보증해 줌으로써 중소기업이 신용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원승연 명지대 교수는 “정부의 중소기업 금융지원 방식은 아직까지도 자본이 부족했던 1960년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신용등급 평가 방식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금융회사는 자본·부채 등 재무적인 요소만으로 신용도를 측정한다. 이런 방법이 현재의 경영상태를 판단할 수는 있지만 기업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종관 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경영혁신연구원장은 “현재 신용도 평가가 행정적 잣대로 이뤄지고 있어 자금의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며 “기업의 특허 등 여러 평가항목을 반영한 새로운 신용평가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승연 교수는 “금융회사가 기업의 잠재력을 예측해 신용평가를 하는 일은 다소 억지스럽고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그런 영역은 미국처럼 벤처캐피털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