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없는 굿' 한 무속인, 사기 혐의로 처벌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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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을 했지만 의뢰인에게 원하는 결과를 이뤄주지 못했다면 무속인을 형사처벌할 수 있을까.

2002년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 한모(46·여)씨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점집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굿이나 기도를 해줬다.

한씨는 지난 2009년 10월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 A씨에게 “삼신할머니에게 빌어서 아이를 점지받는 굿을 한 번 해봐라. 내 고객 중에도 굿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아들을 낳으면 시댁에서도 인정받지 않겠냐”며 굿 비용으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피해자 B씨에게 “신기가 발동해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 영업이 잘 안 되는 이유도 신기 때문이니 신기를 누르는 누름 굿을 하라”고 권해 3000만원을 받았다.

한씨는 “시할머니가 당신을 미워해 모든 운을 막고 있다”, “굿을 하지 않으면 당신의 부모님이 올해 안에 사망할 수 있다” 등의 이유를 대며 2009년 10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의뢰인들에게 총 2억644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한씨가 돈을 받았지만 피해자를 위해 굿을 해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며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한씨가 실제로 굿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등 굿을 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한씨가 객관적·실질적 효험이 없는 굿이 마치 효험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였다”며 “한씨가 설령 굿을 했더라도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내용을 공소사실에 덧붙여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한씨가 무죄라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 김성대)는 “굿 등의 무속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지만 영혼이나 귀신 등 정신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전제로 한다”며 “의뢰자가 반드시 어떤 결과의 달성을 요구하기 보다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주관적 의사가 있고, 이를 위해 무속행위를 했다면 목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의뢰인을 기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무속인이 진실로 무속 행위를 할 의사가 없고 자신도 그 효과를 믿지 않으면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꾸며 부정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 등에는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덧붙였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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