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끌 능력은 애당초 없었다|독립기념관 화재 소방대책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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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목천=임시취재반】독립기념관 화재사건때 천안소방서등 5개소방서 3백여명의 소방관들이 출동은 했으나 불을끌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9일 밝혀졌다.
50m 고공에서 치솟는 불길을잡을 장비가 애당초 없었고 건물의 특성이나 화재현장에대한 사전정보도 깜깜. 인근5곳에서 급보를 듣고 한밤중에 달려간 소방요원들은 지휘부도 통일이 안돼 제각각우왕좌왕 허둥대며 불길이 저절로 잦아들때까지 불못끄는 불끄기소동만 벌이고 말았다.
온 국민을 경악과 분노속에 몰아넣는 독림기념관화재에서 소방행정은 『사전에 철저히 소외된 결과 현장에서 철저하게 무력했다』 는 자체반성이 나왔다.
7일하오2시 천안소방서에서 정환소천안소방서장(61)주재로 열린 천안·대전·서대전·청주·송탄등 당일 출동5개소방서관계자들의 자평가 토론회에서 나온 이같은 현장증언, 문제점분석은 재난의 책임소재가 어디인가를 다시한번 뚜렷이 했다.
◇소외=독립기념관측은 착공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소방안전과 관련, 관할천안소방서는 물론 어디에도 질의나 자문·협의를 해온일이없었다.
오히려 관내 소방의 책임때문에 더 불안을 느낀 천안소방서측이 내무부·충남도의 지시에 따라 『부지만 제공하면 도비로 소방파출소를 짓겠다』고 접촉을 했으나 『붉은색 소방차가 경내에서 눈에띄면 경관에 좋지않고 내빈들에게 불안감을 준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관계자들은 지난해 6월이후 몇차례나 이 문제를 협의하러 추진위를 방문했으나 『공사가 바쁜데 소방서조차 간섭하느냐. 소방관계는 다 중앙에서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 고 문전박대를 당해 간부들을 면회조차할수 없었다.
내무부는 지난해5월중 문공부와 추진위에 두차례 소방안전대책수립공문을 보냈다가 회신이 없자 충남도를 통해 접촉을 지시했었다.
◇정보부재=이같이 공사과정에서 소방행정이 철저히 소외당하는 바람에 관할 천안소방서는 독립기념관내 상황에대해 사전정보가 전혀없었다.
당일 출동한 소방요원들은 공사장내 지형지물이 온통 생소한데다 소화전이나 방화수원의 위치가 어딘지도몰라 우왕좌왕했다.
이때문에 4일밤10시12분쯤 천안소방서가 신고를 받고 13분만인 25분쯤 현장에 첫도착하고도 진화작업은 1시간30분이나 지난 11시55분에야 시작됐다. 옥내소화전등 소방설비는 시공은 돼있었으나 정상작동은 불난 다음날인 5일상오6시부터야 돼 화재당시엔 무용지물.
◇장비부족=정보부재와 함께 장비부족으로 초동진화에 실패했다.
발화지점은 지상에서의 높이가 50m 가까와 펌프차뿐인 천안시관내 소방시설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고, 뒤늦게 대전서 지원출동한 고가사다리차도 외관을 고려, 설치한 철망과 들쭉날쭉한 건물구조때문에 화점을 맞추지못하고 불은 마구 번졌다.
이날 출동한 장비는 펌프차27대, 화학차1대, 고가차2대, 굴절차 1대, 기타12대등.
고공화재 진화에는 쓸모가 너무 적었다. 인근 군부대에 헬기출동도 요청했지만, 인명구조에만 출동한다는 원칙과 야간비행의 위험성 때문에 지원을 거절당했다.
◇지휘혼란=관할 천안소방서외에 인근의 대전·서대전·청주·송탄등 모두 5개서의 소방서원·의용소방대원 3백5명과 경찰관 1백50명이 출동했으나 지휘부가 통일되지않아 제각각 진화작업을 펴 혼란이 컸다.
◇대책·건의=최근 건물이 대형화하면서 시공중 대형화재의 빈도가 높아지는데도 준공검사 이전에는 소방관서가 건물의 구조및 소방시설설치형태등을 구체적으로 알수조차 없는 현행 건축법상의 미비도 보완돼야 할것으로 지적됐다.
감리사들의 설계, 시공단계에서의 화재방지노력과 함께 현재 경찰이 맡고있는 화재감식업무가 소방관서로 넘겨져야할 것으로 지적됐다.
소방관들은 무엇보다 소방법의 적용에 예외를 허용하는 「직무유기의 양보」를 더이상 해서는 안되며 압력에 굴하지않고 법을 법대로 집행, 지도하는 사명감을 갖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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