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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해외 서점가] 후진타오 시대 외교 수장이 말하는 한국·열강과 벌인 ‘밀당 협상’의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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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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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대화
다이빙궈 지음
인민출판

저자 다이빙궈(戴秉國)가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거쳐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으로 활약한 2003년부터 10년간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집권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기간 동안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로 올라서며 국제 외교무대에서 영향력을 높여갔다. 이 책은 그가 10년간 진두지휘했던 미국·러시아·일본·독일·프랑스와의 전략대화 및 한반도·대만 문제를 다뤘던 외교현장의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터프한 협상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2006년 첫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을 협의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6차 중·일 전략대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측이 내미는 절충안을 번번이 거절하며 회담 결렬 발표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그에게 일본 차석 대표가 냉정을 잃고 고성을 지르는 장면이 생생히 드러난다. 저자는 대상포진이 발병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행여 상대방에 약점을 잡힐세라 말도 못꺼내고 이를 악문채 협상을 계속했다고 술회했다. 중·일 정상회담 합의문에 일본 외교문서로선 사상 처음으로 “과거 역사를 직시한다”는 단 한줄의 문장을 집어넣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한반도 관련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에겐 2010년 11월 비행기를 타기 15분 전 방한을 통보하고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켜 달라고 요구해 외교 결례 논쟁을 일으켰던 장본인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저자는 당시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후진타오 주석의 특명을 받고 일각도 임무를 지체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서울 방문 직후에는 평양으로 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모두 10차례 이상 김정일을 만난, 김정일과 가장 친했던 중국인이다. 그런 탓인지 그의 한반도 외교 행보는 북측 입장의 배려에 다소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평도 포격에 대응한 한·미 합동 훈련때 포사격 방향을 북한·중국과 무관한 동쪽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중국이 외교 압박을 가했다는 사실도 저자는 기록했다.

중국 고위 외교관이 회고록을 낸 건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이 책에 기록된 중요 회담·협상의 내용이 예전의 공식 발표나 보도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한계도 있지만, 비밀주의에 싸인 중국 외교의 베일 너머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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