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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비위 33% 뇌물·향응·스폰서, 2000년대 들어 성추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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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홍경령 전 검사, 김광준 전 부장검사, 진경준 전 검사장.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

중앙일보, 각종 의혹 연루 160건 분석
2002년 진술 강요 구타·사망 사건
법무장관·검찰총장 동반사퇴도

초임 검사들이 하는 ‘검사 선서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검사는 이처럼 ‘공익의 수호자’가 될 것을 다짐하지만 정작 검사 본인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본지는 최근 10년간 법무부의 징계를 받아 관보에 게재된 검사 전수를 포함해 1988년부터 올해 9월 현재까지 검사가 각종 문제나 의혹에 연루된 160건을 분석(행정소송을 거쳐 징계가 취소된 경우는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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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 분석 결과 검사가 저지른 비위 중 가장 많은 유형은 뇌물·향응·스폰서 등 금전과 관련돼 있었다. 160건 중 53건(33%)이었다. 수수액을 기준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큰 논란을 빚은 건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와 진경준 전 검사장이었다. 김 전 검사는 2012년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 측근 등으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10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2014년 대법원은 이 중 4억여원을 뇌물로 보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은 2005년 30년지기 김정주 넥슨 NXC 대표로부터 4억2500만원을 받아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취득해 126억여원의 부당 이익을 올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직 검사들은 법조비리 사건이나 대형 게이트 등에도 자주 연루됐다. 2006년 ‘박연차 리스트’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김종로 당시 부산고검 부장검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1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김 검사는 2010년 대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2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금품 수수 사건은 2000년대 들어 늘어났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부터 파산이나 인수합병을 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며 “그들이 위법·탈법적 수단을 이용하려고 검찰 권력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돈거래가 생겼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43건(27%)에 달했다. 이 중 수사 대상이나 관계자에게 폭행 및 폭언, 진술 강요를 한 경우가 13건이었다. 2002년 서울중앙지검 ‘피의자 구타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살인 혐의로 조사받던 폭력조직 부두목이 검찰 수사관들에게 맞아 숨졌다. 폭행한 수사관들은 물론 사건 담당 홍경령(당시 37세) 검사가 폭행 공모·방조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사건 직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수사 부당 개입이나 직무태만이 문제가 된 경우는 30건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성추행 등에 연루된 경우가 급증했다. 성 문제와 관련해 징계를 받거나 물의를 일으킨 사건은 15건(9%)으로 집계됐다. 2012년 광주지검 목포지청 소속 전모(당시 30세) 검사는 서울동부지검에서 실습 파견 근무를 하던 중 절도 혐의를 받던 피의자 A씨(당시 43·여)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었다. 전씨는 A씨를 검찰청으로 불러 조사하다 유사 성행위를 했고 사흘 뒤 숙박시설에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드러나 뇌물 수수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전씨가 사건 수사에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직무 관련 대가성이 인정된다”며 성관계도 뇌물에 해당한다고 보고 징역 2년을 확정했다.

2010년에 후배 검사를 성희롱한 혐의로 당시 손모 법무연수원 교수가 견책 처분을 받았고, 2012년 서울남부지검 최모 부장검사가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일어 정직 3개월을 받았다.

이외에도 음주운전·폭행·위장전입 등 개인 비리 사건이 30건(19%), 검사의 권한을 남용한 경우가 11건(7%)이 있었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권·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의 근원”이라며 “이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군과 정보기관의 힘이 빠지면서 검찰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검사들의 비위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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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지난달 24∼25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7명(70.4%)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사와 혼인 혹은 친분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답한 비율도 70.1%나 됐다. 신뢰한다는 쪽은 ‘실리’를 중시했다. ▶수사나 재판받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60.1%) ▶업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23.2%)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서(9.6%)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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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검사 출신인 문영식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럴듯한 다짐만 하며 개혁을 외치지만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아 검사에 대한 신뢰도가 계속 떨어지는 것”이라며 “특히 검찰 조직에서 잘나가는 검사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아 검찰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심서현·김선미·송승환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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