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시대의 개인적 도덕|김우창<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는 오늘날 집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사회 전체로 또는 집단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정신적 가치 또는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이야기되는 도덕적 덕성은 집단에 관계되는 것이다. 즉 민족·국가·계급·당·회사·씨족 모든 집단적 범주가 우리의 헌신적 봉사를 요구한다.
그리고 도덕적 행동은 여기에 봉사하는 여러 행동들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집단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는 정신의 특성들은 별로 주목되지 않거나 오히려 집단을 위한 행동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 우리의 도덕적 소망은 집단적 덕성의 표현으로써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라를 사랑하기만 하면, 민족을 사랑하기만 하면, 또는 직장에 충성하기만 하면 우리의 도덕적 의무는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집단적 덕성과 개인적 덕성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은 개인적인 행동에서보다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개인의 내면을 통과하는 감정·성향 또는 행동으로써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다.
충성이나 애국심은 집단적 덕성이면서, 개인 속에 하나의 감점상태 또는 성향으로 존재하다가 행동으로 표현된다. 이웃에 대한사람은 조금 더 개인적인 품성에 관계되는 덕성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집단적 범주에 관계없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실천자 자신의 내면적 속성이 되어야 한다. 연민, 자비, 신의, 친절 또는 관용성과 같은 것도 대인관계 속에서 일어나면서 개인의 성향에 이어져 있는 덕성들이다. 그러나 절제라든가 평정과 같은 것은 더 좁게 개인적인 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생활에 관계되는 영혼의 특성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나 자비나 관용성 또는 다른 대인관계의 덕성 또는 애국심이나 집단을 위한 용기 같은 것도 단순히 영혼의 특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 차이는 덕목 자체보다 덕목이 그 실천자에 의하여 어떻게 내면화되었느냐에 관계되어 있다. 즉 어떤 덕목이든지 그것이 철저하게 내면화될수록 개인적 성향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면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이야기되는 사람의 도덕적 성격은 대체로 개인적 수련과는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도덕적 인간이란 끊임없는 수련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즉 수양이란 것이 이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내면적 반성과 교정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오늘날 도덕적 행위는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주어진 성품이나 충동을 그대로 제약 없이 발휘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특별히 배울 필요도, 수련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는 느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다만 자연스러운 사랑의 작용을 막는 것들을 억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는 충성심이나 애국심과 같은 것도 반복적 강조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용기나 정의감 같은 것도 주어진 성향이나 자질로 의지력의 강화를 통한 북돋움만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조금 더 내면적 수련을 필요로 하는 덕목들이 있다. 생활과 행동에 있어서의 절제, 마음의 평정과 같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극기 적 수련에 의하여 우리의 성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예의와 같은 것도 배워서 얻어진다.
관용성은 사물을 넓은 테두리에서 살피고 마음가짐을 그에 맞춰 보는 훈련에서 자라나 온다. 정직성, 성실성, 마음의 섬세함도 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적 균형, 공정 함, 사리 등은 지적훈련에 의한 도덕적 감각의 변용을 통하여 굳어지는 덕성들이다.
사실상 어떤 덕성들은 지적 훈련, 심미적 감성훈련, 신체적 단련 등을 통하여 형성된다.
또 그것은 일시에 얻어지기보다는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끊임없는 도정에서 근접될 뿐이다.
위에서 말한 집단적 덕성들은 주어진 성품을 그대로 발휘하거나 아니면 외적인 기율과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집단적 덕성들도 내면적인 수양에 의하여 인간의 내면 속에 녹아들 수 있다.
그리고 안으로부터 넘쳐 나는 영혼의 특성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아마 가장 높은 경지일 것이다.
오늘날에 잊혀진 것은 내면적 완성 과정으로서의 도덕적 품성이다. 그리하여 민족이나 정의나 충성에 의하여 모든 개인적 덕성의 부재가 보상될 수 있다는 생각이 통념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오늘의 정치나 사회의 지도자중 정치적으로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개탄을 듣지만 그 보다도 높은 개인적인 의미의 도덕적 품격을 지닌 사람을 보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오늘의 현실에서 정직, 성실, 관용, 지적 공정성 등은 정치에 있어서 이익보다는 손해를 주는 덕목들이다.
오늘의 근본문제가 제도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에 대하여 부여하는 가치가 뒤틀려 지게 된 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이야기는 조금 차원이 달라지지만,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부천 성 고문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묵인 또는 허용 또는 방조되고 은폐되는 마당에 오늘의 이 땅에서 인간과 인간의 도덕을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한다면, 그 이상 할말이 없는 일이기는 하겠다. 이러한 사건은 정치는 고사하고, 오늘의 인간성에 절망하게 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