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고지서’ 부른 정부 전기 독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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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요금은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공공요금 원가 공개한다더니
유독 전기료만 2년째 미루고
한전 작년 영업익 11조 넘는데
871만 가구 전기료 50% 급등

정부의 ‘공공요금 산정기준’에 등장하는 첫 번째 원칙이다. 전기·상수도·철도 등 공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서비스에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원가를 기준으로 요금을 인가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2010년 이후 매년 각 공기업이 총괄원가를 산정해 공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각종 비용은 물론 세금, 적정 투자 마진까지 더한 게 총괄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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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독 전기요금만 2년째 총괄원가 공시가 미뤄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전력공사의 실적을 기준으로 한 원가는 물론 2014년분도 미공개 상태다. 전기요금 수준이 적정한지 따질 잣대를 오직 정부와 한전만 알고 있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공시 자료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기술적 검증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상수도 요금, 도로 통행요금 등 다른 공공요금은 꾸준히 원가를 공시하고 있다. 한전의 원가 공개가 중단된 2014~2015년은 원가 대비 전기 판매 수익인 ‘원가회수율’이 10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이다. 저(低)유가에 한전이 발전사에서 사오는 전기 도매가가 절반 아래로 떨어진 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 수치가 공개될 경우 요금 인하 요구가 빗발칠 것을 우려해 늦추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은 2014년 흑자로 돌아선 이후 지난해 11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다. 올해도 상반기 영업이익만 6조3000억원에 달했다.

한전의 실적이 기록 경신을 하는 사이 가정에는 8월분 ‘누진제 폭탄’ 요금 고지서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한전에 따르면 올 7월 대비 8월 요금이 50% 이상 늘어난 가구는 871만 가구에 달한다. 그나마 한시적 누진제 완화에 가구당 9110원을 깎아줬다는 게 한전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반발은 쉽사리 누그러지지 않을 조짐이다. 여론에 밀린 한시적 인하인 탓도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인하 폭을 정했는지 기준조차 불투명한 ‘깜깜이 인하’여서다.

전력 판매시장 개방, 독립적 규제기구 도입 등 근본 대안 마련 역시 지체되고 있다. 올 6월 기획재정부는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통해 연내에 전력판매 시장 개방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당시 올 4월 판매시장을 전면 개방해 100개 넘는 다양한 요금제가 등장한 일본형 모델도 언급됐다. 하지만 최근 산업부는 로드맵 발표 시점을 내년 상반기로 슬쩍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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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땜질 대책’으로 넘어가지 말고 불투명한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손볼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소비자의 불만을 달래려면 한시 인하가 아니라 요금제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부터 제시해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판매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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