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지진 났어요, 그리 아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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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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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땅 밑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한반도를 뒤흔들고 96분이 지난 시점에서 기상청 과장이 한 브리핑이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는 안심성 발언을 공포에 질린 국민이 어찌 믿을 수 있는가. 기상청장이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뒤늦게 수정은 했다. 국민 안전을 총괄하는 안전처 책임자는 다음 날 느지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진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기상청 발표를 복기한 수준이었다. 경주 지진이 규모 6.0 이상이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예측하지 못해 다 무너졌네요’라고 했을까. 추석까지 진동한 총 334회 여진 중 규모 4.2 지진이 한 차례 지나갔다. 필자는 재난 문자를 받지 못했다. 일부 받은 사람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진 발생/ 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절개지를 운전할 때 흔히 보이는 대책 없는 경고문과 같다. ‘낙석에 주의바랍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신설된 국민안전처 재난통계에는 ‘지진’이 빠졌다. 조직 부서에 지진방재과가 있음에도 심층 정보는 없다. 기상청이 대행한 때문인가. 그렇다면 지진 감지, 경보, 대피방송을 책임진 기관은 어디인가? 기상청이 관측하고 국민안전처에 통보하는 그 찰나적 틈을 땅 밑 마그마가 허용하지 않는다면? ‘현대과학으로 예측이 어렵다’면 어떻게 이웃 일본은 몇 초 내 즉각 대응단계에 돌입하는가? 지진 전조(前兆)를 잡아낼 정부기관, 전문가는 없는가? 지난 7월 5일 20시33분,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누구도 우려하지 않았다. 기상청 홈페이지 지진통계를 꼼꼼히 살피면 뭔가 징후가 잡히는데도 말이다.

지진통계가 시작된 1978년 이후 한반도 땅 밑 추세는 심상치 않다. 20년 단위로 나눠보면 규모 2.0 이상의 지진 발생 건수는 1978~1997년 403회, 1998~2016년 863회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땅 밑이 뜨거워졌다는 얘기다. 올해만 총 발생건수가 57회에 달해 관측사상 최고치다. 1978년 이후 한반도에 규모 4.9 이상의 지진이 13회나 발생했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평북 삭주, 황해도 서안, 충남 내륙, 경주와 울산에서 발생했다. 남서해안, 남해안, 남동부 해안은 규모 4.0 이상의 지진이 빈발한 지역이다. 양산단층이 통과하는 경주 주변이 더 불안한 이유다. 그래도 대책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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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료를 찾아봤다. 김종서가 편찬한 『고려사절요』에 경주 지진이 6회 기록되었고, 정인지가 편찬한 『고려사』에는 35회가 언급됐다. 김부식은 『삼국사기』(1145년)에서 신라 100 여 회, 고구려 30회, 백제 30회 지진을 언급했다. 김부식의 신라 사랑이 유별났기에 더 신경을 썼겠지만 대부분 경도(京都·경주) 지진으로 추측된다. 문무대왕 13년(673년) 봄에 괴이한 별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자 대왕이 걱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김유신이 조아려 안심시켰다. “지금의 변이는 액(厄)이 늙은 신하에게 있는 것이지 국가 재앙은 아니옵니다”라고. 불사에 치성을 드리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고려사절요』는 1012~15년 매년 발생한 경주 지진을 기록했는데 대우뇌전(大雨雷電), 번개 빛이 낮과 같은 경천동지(驚天動地)였다. 뒤틀리는 땅을 제천(祭天)으로 달랜 인습은 조선에도 그대로 반복됐다. 태종 5년(1405년), 경상도 경주와 안동에 지진이 일어났고, 숙종 43년(1717년)에는 양산단층인 대구, 경주, 동래, 의성에 큰 지진이 발생했다. 대신들과 논의한 끝에 왕이 명령했다. 향과 축문을 내려 해괴제(解怪祭)를 지내라고. 부덕의 소치이니 머리를 조아려 천재지변의 기운을 해소하려는 축원이었다.

이런 기록들은 경주와 인근 원전지대를 강타할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 해괴제를 명령할 만큼 국가는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런데 최첨단 과학시대에 기상청 과장이 브리핑을 맡고, 국민안전처가 그대로 복기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가? 지붕이 요동치고 담벼락이 무너진 초유의 위급 상황에서 기관마다 대피를 결정하고 행동을 지도할 안전요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벌거숭이 안전대책을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는가. ‘별거 아니다, 공부해라!’ 부산 어느 고교 교사가 발령한 대처 방법이었다.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엄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국민행동요령’ 9항은 ‘대피권고가 나면 협력해서 대피하자’다. 그런데 누가, 언제, 긴급 ‘대피권고’를 발령하는가? 권고인가 훈령인가? ‘안전에 주의바랍니다’라는 재난문자는 아파트 경비원이 발한 주민방송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지진 났습니다. 그리 아세요.’ 이번 지진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가정하면 국민안전처는 폐기되고 국가안전처가 신설될지 모른다. 권고 문자는 이럴까? ‘국가는 안전합니다. 그리 아세요.’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