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한국 관광객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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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31면

런던의 여름은 올해 서울만큼 덥진 않았다. 하지만 딱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한 날씨 때문에 나는 밖에 앉아서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를 마음껏 즐겼다. 그 취미는 바로 한국인 관광객을 구경하는 것이다. 몇십 년 동안 그들을 지켜본 이유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행동 방식이 늘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곳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본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한국인은 아직 드물었고 종종 일본인들로 오해받곤 했다. 당시 일본 관광객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한국인들은 일본인으로 불리는 것에 분개하기도 했다. 한국 관광객들은 불안하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한국인을 태운 버스를 보는 것은 우주탐사선 안에서 여행하는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주선 밖의 낯선 세계를 불안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들은 단체여행 버스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집단의 안전함과 가이드의 보호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두려운 결정이었다. 그들은 늘 길을 잃는 것,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낯선 사회에 불쾌감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인들을 태운 단체여행 버스가 관광지에 멈추는 경우에도 문은 열리진 않았고,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승객들은 창문에 코를 박고 사진을 찍었다. 19세기 유럽 탐험가들이 같은 마을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낯선 아프리카 공예품을 가져왔던 것처럼 당시 한국 관광객들은 외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사진을 찍었다.


나는 유리창 뒤로 보이는 얼굴들을 향해 손을 흔들곤 했다. 가끔 그들은 미소를 보이며 손을 흔들어줬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손을 흔드는 것이 그저 친밀한 제스처인지 어떤 낯선 의례(아마 인간 제물을 포함하는)에 참여하라는 영국식 초대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실제로 영국인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더니 1990년대 어느 순간부터 한국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세상에 대해 아주 깜짝 놀랄 만한 발견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침내 모든 외국인이 식인종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 발견은 한국의 관광에 혁명을 일으켰다. 한국인들은 서서히 투어 버스의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내 깃발을 높이 든 한국 가이드들이 새끼 오리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 오리처럼 관광객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일은 런던의 흔한 풍경이 됐다.


한국인들은 빨리 대담해졌다. 그들은 스스로 돌아다니더라도 별 문제 없이 살아남을 확률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빅벤, 대영박물관, 트래펄가 광장과 같은 런던의 주요 관광 명소에만 모여들던 한국인들이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장소에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런던 펍을 찾아냈다. 영국 펍에서는 누구도 그냥 맥주를 주문하지 않는다. 다양한 맥주 중 원하는 특정 맥주가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뭘 주문해야할지 고민하는 한국 남자 두 명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여러 가지 맥주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맥주들을 가지런히 줄세워놓은 테이블 앞에 행복하게 앉아 마음에 드는 맥주를 찾기 위해 하나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런던의 시장을 찾아가 기발한 바디 랭귀지나 몇몇 문장을 휘갈겨 쓴 수첩을 보여주며 기념품 값을 깎곤 했다. 젊은 부부들도 신혼여행으로 런던을 찾았다. 그들은 편안해 보이는 커플티를 입고 나란히 서서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딱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절대 손을 잡거나 웃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신혼여행이 즐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신혼부부들이 진짜 즐거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그룹을 떠나자마자 당연히 영국에 런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가끔 산책을 나가면 나는 등산복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한국인들을 마주친다. 그들은 유용한 문구가 쓰여진 종이 몇 장을 지니고 영국의 산을 성큼성큼 걸어다닌다. “이 주변에 펍이 있나요”와 같은 잡담부터, 늘 날씨에 대해 토론하는 영국인들의 강박증을 반영한 듯 “햇빛이 아름답지 않아요” “비가 내릴 것 같나요” 같은 문구까지 쓰여져 있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런던에는 특히 영어가 불완전한 사람이 많아서 당신이 영어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은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다.


올 여름도 영국은 한국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의 찜통 더위로부터 도망온 것일 수도 있고, 파운드 가치가 떨어진 데 이끌린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젊은 한국인은 유스호스텔에, 나이 든 한국인은 상점에, 학구적인 한국인은 극장에 있다. 몇몇은 연극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셰익스피어 책을 극장까지 갖고 오기도 한다. 이번 여름 초반에 영국 동부의 외진 지역인 노퍽으로 휴가를 간 나는 아침 일찍 바다를 따라 걷고 있었다. 텅텅 비어 있는 해변에는 젊은 커플이 앉아 조용히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그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해 유럽에서 가장 성대한 런던 노팅힐 카니발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봤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몸을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시끄러운 음악을 차단하려 귀를 막았다. 그들 중 한 명은 꼼짝도 하지 않고 가이드북을 읽으며 정확히 무엇을 해야하는지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때 내 뒤에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커플 두 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잠깐 의논을 하더니 근처 가게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보드카 병을 들고 나와 모두가 벌컥벌컥 마셨다. 그들은 가이드북을 펴 볼 필요도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퍼레이드 뒤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한 남자는 나비 복장을 한 흑인 여성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올해 같은 행사에서 본 한국인들은 퍼레이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행렬 중간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는 카니발 복장까지 갖춰 입은 젊은 한국 여성을 보며 도대체 저걸 어디서 구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그들이 아주 멋진 시간을 보냈기를 바란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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