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국회의원 선거법 개정|당략-사리 얽혀 "눈치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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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간에 개헌문제로 긴장상태가 이뤄져있는 사이로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 선거법의 개정방향에 관심을 쏟고 있다.
물론 개헌의 방향이 선거법의 방향도 결정하게 되겠지만 의원들의 현실적 이해가 긴박하게 얽혀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선거법의 개정방향이 개헌협상의 가장 큰 막후 흥정거리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까지 있다.
그런 까닭인지 여야 각 당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태도표명을 피하고 있다. 민정당 측은 이미 상당한 깊이까지 작업이 진척되고 있음에도 『개헌협상 후의 문제』라고 일체 함구하고 있고, 신민당도 지도부 몇 명이 『소선거구가 당의 입장』이라는 다분히 명분론적인 공격용 발언을 되풀이할 뿐 아직 이렇다할 구체적인 당론은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이 문제에 당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할 수 있는 국민당이 표면적으로 선거법특위를 구성하고 작업에 들어간 정도다.
앞으로 헌법이 어떻게 고쳐질지 모르나 만약 내각책임제적인 방향이라면 선거법은 사실 각 당의 집권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모든 정당이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민정당 측의 선거법개정연구방향은 일단 중선거구제로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소선거구제에 대한 검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의원수의 확보라는 문제에서만 보면 소선거구는 일반적으로 집권당에 유리하고, 민정당 측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소선거구가 되면 기본선거구가 될 시·군·구는 모두 2백37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구의 극심한 편차라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아무리 지역대표성이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인구 1백만에 가까운 서울동대문구와 주민 기만명에 불과한 울릉군이 같은 수의 대표를 선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동대문구를 십여개의 선거구로 나눌 수도 없기 때문에 대도시와 농촌선거구의 인구편차는 불가피하고, 그것은 선거구가 많은 농촌·중소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여당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요인이 된다.
다만 민정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2·12 총선과 같은 결과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즉.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 등 6대도시 29개 선거구에서 민정전의 1위 당선자는 7명뿐이었다.
다음 선거에서도 만약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민정당은 참패를 면할 수가 없게 된다. 선거구를 늘려야 하는 곳도 대도시이므로 분구해서 여당 측이 득될 게 없다.
대도시에서 이렇게 완패한다면 비록 농촌과 중소도시를 발판으로 수적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정치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대해 민정당 일부에서는 스스로 회의적이다.
민정당은 11대 국회 선거법 협상 때 인구 과소지구에서는 1명, 과다지구는 3∼4명씩 뽑는 이른바 1구 다인제를 내놨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당이 유리한 농촌과 과소지구는 독차지하고 불리한 대도시 과다지구 수는 줄이겠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불공정」선거계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정당이 중선거구를 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정당이 집중검토하고 있는 것은 일본식과 비슷한 1구 2∼5인 선출 제도다. 11대 때 협상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예컨대 인구 30만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2명씩 뽑고 그 후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의원 수를 늘려 가는 것이다. 이 경우 인구과밀선거구도 분구할 필요 없이 의원 수만 늘리면 된다.
그러나 이 방식을 택하면 안정의석을 얻기 위해 1선거구에서 복수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게된다.
일본의 경우는 자민당 안에 경쟁적인 파벌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쟁적인 복수후보가 무리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사불란한 단일지도체제에 젖어온 민정당이 당내파벌조성으로 이어질게 뻔한 복수공천을 전제한 중선거구제를 택한다는 것도 하나의 모험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민정당의 앞으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커다란 변화로 발전해나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정당이 어떤 선거구를 선택하느냐는 문제도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비례대표제문제는 소선거구를 택하거나 인구비례에 의한 중선거구를 택할 경우 둘 필요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원칙으로 간주되지만 민정당 측은 유능한 인재확보라는 측면에서 존속시키려는 방향인 것 같다.
다만 현재 전체의 원수 3분의1은 너무 많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므로 그 수를 대폭 줄일 생각이다. 전국구 배분방식은 현행처럼 제1당이 3분의2를 무조건 차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원내안정의석 확보를 위해 제1당이 절반까지는 차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신민당의 사정은 민정당의 입장을 뒤바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 지도부에서는 원칙론으로 소선거구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의견에 선뜻 동조할 수 있는 것은 대도시출신 의원들뿐이다. 지난 11대 선거때 서울·부산·대구·광주·인천·대전 등 6대도시 29개선거구에서 신민당소속 20명이 1위 당선을 했지만 그 밖의 63개 지구에서는 고작 7명이 1위 당선을 했을 뿐이다.
현격한 표차로 2위 당선의 턱걸이를 한 의원들이 소선거구를 원할 까닭이 없다. 게다가 현재 20여명의 의원들은 여당의원과 같은 시·군 출신이다. 이들은 더더욱 완강하게 소선거구에 반대할 것이다. 신민당 측이 이와 같은 당내의원들의 요구를 묵살해가면서까지 소선거구제에 집착할 까닭은 없어 보인다. 다만 소선거구를 택할 경우 선거구가 대폭 늘어나고 이것은 원외정치지망생들의 정치수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현재 원내의석에 집착하는 쪽은 현상유지 쪽으로 기울고, 원외 파는 소선거구제나 또는 선거구의 대폭 증설이 보장되는 쪽을 바랄 것이다. 비례대표제 문제에 있어서도 배분방식에 문제가 있는 현행방식을 문제삼아 이의 폐지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선거자금의 충당 등 현실적 이점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같은 민정당과 신민당의 사정으로 볼 때 현역의원들의 이해가 존중된다면 결국 현행의 중선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의 제도가 손쉬운 선택이기는 하다. 더군다나 국민당은 제3당의 「생존」을 위해 2∼5인의 중선거구에 필사적으로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법만큼 당략적인 법도 있다. 개헌협상을 주도하는 정파의 이해가 쏠리는 방향으로 그 개정의 방향도 곡절을 거듭할 것 같다. <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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