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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논마마’를 선택한 여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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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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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피플앤이슈부 기자

일본 드라마가 예전에 비해 재미없어졌다고들 하지만 사회의 변화상을 콕 집어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능력엔 늘 감탄한다. 지난 8월부터 후지TV에서 방영 중인 ‘논마마백서(ノンママ白書·사진)’란 드라마 역시 그렇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와마마(ワ-ママ·워킹 마더의 준말)’가 주목받는 시대, 아이 없이 살기로 결정한 ‘논마마’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올여름 일본에서 출간된 정신과 전문의 가야마 리카의 책 『논마마라는 삶의 방식-아이가 없는 여자는 안 되나요?』를 토대로 만든 ‘사회파 여성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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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까지 방송된 이 드라마에는 저출산시대, 자신도 모르게 ‘천덕꾸러기’가 돼 버린 논마마들의 삶이 실감 나게 그려진다. 아이 없이 이혼한 49세의 광고대행사 부장 도이(스즈키 호나미)와 동갑내기인 미혼의 회사 동료 오노(기쿠치 모모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프리랜서 기자 하야마(와타나베 마키코)가 등장한다. 이들은 일본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30년 전 사회에 나와 ‘직장이냐 가정이냐’의 갈림길에서 일을 선택했다. 후회하지 않으려 열심히 달려왔지만 지금은 이리저리 치이기만 한다. 직장 상사는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으니 부하 직원도 키울 줄 모른다”고 질책하고, 남자 동료들은 ‘꽉 막힌 일 중독자’ 취급이다. ‘와마마’인 여자 후배들에게는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시죠?”란 항의를 듣기 일쑤. 논마마들은 술잔을 앞에 놓고 고민한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다소 과장된 설정이지만 게시판엔 논마마 시청자들의 조용한 지지가 넘쳐난다. “아이를 낳아야 여자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는 사회,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마음을 대변해 줬다”는 감사인사다. 난임으로, 일을 포기하기 싫어서, 또는 엉망인 세상에 하나의 생명을 내놓을 자신이 없어서 등등 논마마들이 풀어놓는 사연도 절절하다. 이들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각자의 삶엔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이 있노라고 세심하게 다독이는, 시의적절하며 그래서 부러운 드라마의 등장이다.

한국인 시청자에게 신기한 건 이 드라마에는 논마마들이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혼 여성인 하야마도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때?”란 친구들의 질문에 “그런대로 괜찮다”고 답한다. 반면 이 땅의 논마마들에게 가장 큰 난관은 가족 아니겠는가. 이제 곧 추석, “더 늦기 전에 애를 낳아야” 공격에 노출된 한국의 논마마들이여, 마음의 갑옷을 든든히 조이고 상처 없는 명절 보내시기를. 부디.

이영희 피플앤이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