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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쳐 입는 중치막 코트…디자인 만나 행복한 한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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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일상으로 들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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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회의나 공식 만찬에 자주 참석하는 나승연씨는 “신한복을 활용하면 은근하면서도 개성있는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비치는 옷감인 노방을 사용해 겹겹이 입을 수 있게 디자인한 중치막 코트. 조합에 따라 색다른 배색 효과를 낸다.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었던 게 언제였더라. 결혼식이나 부모님 환갑잔치, 자녀 돌잔치 같은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면 대부분 한복에 대한 기억을 찾기 힘들다. 재미있는 건 요즘 10~20대들은 오히려 ‘일상에서 한복입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서울 광화문이나 홍대 앞에서 한복 차림의 젊은이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모처럼 일고 있는 한복에 대한 관심을 한복 문화 부활로 이끌기 위한 캠페인이 최근 출범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산하 한복진흥센터가 추진하는 ‘오늘은 한복’ 캠페인이다. 일상 속 한복을 확산하기 위한 이 캠페인에 사회 명사들도 나섰다. 가장 먼저 동참한 나승연 전 평창 겨울올림픽유치위원회 대변인이 추석을 맞아 다양한 한복 스타일을 선보였다.

전통 한복 부담스러울 땐 신한복

“2년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코리안 나이트’ 만찬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 한복을 입었죠. 2021년에 열리는 국제회의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한 중요한 날이었는데, 한복 덕분인지 대회 유치에 성공했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은 게 언제였는지 묻자 나승연 대표가 말했다. 그는 올림픽유치위원회 활동 이후에도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정부와 기관의 대변인 역할을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는 스피치 컨설팅업체 오라티오 대표로 있으면서 국제회의나 공식 만찬에서 MC로도 활동한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자주 하다 보니 기회가 될 때마다 한복을 입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사 내용에 따라 한복을 일부러 선택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한복이 아름답지만 행사 성격에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미래 지향적이고 젊고 역동적이고 글로벌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에서 전통 한복을 입으면 자칫 고루한 이미지를 줄 수도 있거든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한복을 입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미래 지향적 이미지를 위해 결국 양장으로 결정됐다. 이런 맥락에서 나 대표는 신한복을 반겼다. 신한복은 전통 한복의 디자인과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옷을 말한다. 이를테면 두루마기에서 영감을 얻은 외투, 허리치마를 개선한 스커트, 배자가 변신한 조끼 등이다. 디자인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전통 한복의 불편한 부분인 고름·동정·대님 등을 고쳐 편의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개량한복과 구분된다.

직령포 이브닝드레스, 두루마기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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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택있는 공단으로 만든 치마 저고리 위에 붉은색 장배자를 입어 경괘한 느낌을 줬다.

나 대표는 “한복은 소재와 색깔이 화려해서 어느 자리에서도 예쁘다는 칭찬을 받고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면서 “주목받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좋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자주 입기 어렵고 솔직히 부담된다”고 말했다. 왠지 화장도 달리 해야 할 것 같고, 머리도 말아 올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보면 혼자만 너무 과한 차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대표의 이 같은 지적은 아마도 한복이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듯하다.

신한복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한복에서 일부 요소와 아이디어를 얻어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일상복, 즉 서양 의상과의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천의무봉’(디자이너 조영기)이 내놓은 이브닝드레스가 좋은 예다. 조선 초기 관복인 직령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 선명한 진달래색 실크 소재를 사용했는데, 앞을 여며 입으면 단 한 벌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칵테일 드레스가 된다. 격식을 갖춘 모임이나 리셉션에 참석할 때, 또는 행사를 추죄하는 호스트인 경우 ‘잘 갖춰 입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 대표는 “손님으로서 디너 행사에 참석할 때 한복을 입으면 호스트보다 더 주목받을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직령포 이브닝드레스는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너무 튀지 않게 은근히 돋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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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의 겉옷 중 하나인 도포에서 영감을 얻은 남성용 코트.

두루마기를 코트로 변형한 디자인은 대표적인 신한복 제품이다. ‘사임당 바이 이혜미’(디자이너 이혜미)는 여성용 두루마기를 무릎길이의 A라인 코트로 만들어냈다. 검정색 아크릴 천으로 몸판을 만들고 깃과 소매는 윤이 나는 공단을 활용해 디자인적 변형을 시도했다. 붉은 공단 옷고름과 몸판 아랫부분에 붉은색 민화풍 꽃자수가 어우러져 보기에도 화려하다. ‘한복문’(디자이너 황선태)은 색동을 재해석한 두루마기 코트를 선보였다. 물감이 번진 듯한 천을 활용해 오방색으로 몸판 일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선비의 겉옷 중 하나인 도포도 훌륭한 코트가 된다.

‘사임당 바이 이혜미’는 깃과 소매 뒤판 상단 등에 부분적으로 다른 패턴을 사용해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도포 코트를 디자인했다. 나 대표는 “요즘은 기업에서도 비즈니스 미팅 후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는 문화가 많아졌다”며 “외국 손님들과의 자리에서 전통 한복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신한복으로 개성 있는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치막 코트와 철릭 원피스, 배자 조끼

‘서담화’(디자이너 송혜미)의 중치막 코트는 전통적인 겹침 효과를 잘 살렸다. 생견사로 만든 얇고 비치는 옷감 ‘노방’을 사용해 겹겹이 입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어떤 색을 안에 받쳐 입느냐에 따라 색다른 배색 효과를 낼 수 있어 그날그날 다른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중치막은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트임이 있는 옷이다. 전통적으로는 앞의 두 자락, 뒤의 두 자락 모두 네 자락으로 나뉘는 옷이며 도포와 저고리 사이에 입는다. 이 디자인은 우수문화상품으로 선정돼 현재 기성복으로 제작,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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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리넨 소재의 철릭(조선시대 무관의 겉옷) 원피스 위에 허리치마를 덧입었다.(왼쪽) 허리치마
는 서양 의상인 블라우스와 매치해도 맵시가 난다.

철릭 원피스와 허리치마는 10~2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철릭은 조선시대 무관이 주로 입던 겉옷이다. ‘차이킴’(디자이너 김영진)은 흰색 리넨 소재의 철릭 원피스 위에 주황색 허리치마를 레이어링하는 룩을 제안했다. 전통 한복은 치맛말기를 겨드랑이 밑에까지 바짝 추켜서 치마끈을 여미지만, 현대식으로 입는 허리치마는 허리선에서 묶는다. 상의로 저고리를 입으면 한복 느낌이 물씬 나고, 티셔츠나 블라우스를 곁들이면 주름이 풍성한 치마가 된다. 박소현 스타일리스트는 “여름에는 철릭 원피스 하나만 입어도 되고, 그 위에 색깔 있는 허리치마를 레이어링하면 엄마와 딸이 커플룩으로도 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릭은 겨울 코트로도 변신한다. ‘한복문’(디자이너 황선태)의 철릭 반코트(우수문화상품 지정)는 소녀다운 발랄함을 느끼게 한다.

배자는 저고리 위에 입는 전통 조끼다. 저고리 길이에 맞추느라 길이가 짧았는데,

‘조윤숙 한복연구실’(디자이너 문쌍후)은 현대식으로 길이를 길게 한 장배자를 만들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블라우스와도 잘 어울려서 ‘한복 초보자’에게 유용하다. ‘유현화 한복’(디자이너 유현화)은 위아래 흰색 치마저고리에 붉은색 벨벳 장배자를 덧입는 여성스럽고 경쾌한 룩을 선보였다.

버선코 신발 등 소품부터 써보세요

조각보 장식을 한 귀주머니 형태의 클러치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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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복이 부담스럽다면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도 좋다. 셔츠나 블라우스, 재킷 위에 보색의 깃 목도리를 매치하면 한국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버선코를 형상화한 펌프스, 고무신을 모티브로 한 슬립 온 슈즈, 귀주머니 형태에 조각보 장식을 더한 클러치 백 등도 나와 있다. 최정철 한복진흥센터장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멋을 담아낼 수 있는 한복에 현대인의 취향을 가미한다면 최신 패션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면서 ”우수한 한복 상품은 우수문화상품으로 지정해 국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한복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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