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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 강박성격의 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몹시 깔끔한 환자가 있다. 침대보도 빳빳이, 그리고 반듯하게 펴놓고 그곳에 물방울·핏방울 하나가 떨어져도 새 것으로 갈아달라는 눈치가 역력하고 자기병에 관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다. 「환자수칙」을 먼저 물어오며 주당입완비고지서를 받자마자 그날로 돈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런 양심적 모범환자야말로 얼마나 의사에게 좋을까.천만의 말씀이다.
왜냐. 자기가 완전 무결한만큼 이들은 병원과 의사도 자기처럼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깐깐하다. 『지금 내가 먹는 약의 화학방정식과 부작용은 뭐요』『왜 불러도 당장 뛰어 오지 않소』『의사의 회진시간이 오늘은 왜 30분이나 늦소』라는등 모든 점을 세밀히 따진다.
그리고 고집이 세어 자기가 납득할 수 있을때까지 집요하게 질문을 하며, 초년병 인턴이 좀 서투르게하면 화를 벌컥 낸다.
이들이 바로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다. 이들은 걸음마를 시작할무렵 대소변가리기에 혹독한 훈련을 부모에게서 받은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놈아, 이제 응아하거라, 응아…』하는 어머니에 대해 『내똥은 내가 알아서 쌀텐데 왜 이래!』라는 심정의 어린 그는 그 어머니와 주도권·패권다툼을 심하게 한 경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오늘날에도 이들의 내심에는 더럽히고 어지럽히고 싶은, 그리고 충동적·공격적인 성향이 짙게 깔려있는 반면 겉으로는 반대로 질서정연·청결·완벽주의가 평소의 성품을 이루어 속의 욕구를 누르고 있다.
병에 걸렸다는 스트레스가 자신의 이런 충동제어력을 잃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함으로써 이들은 특유의 성품을 더욱 보강시킨다. 그러니 입원한 이들은 고집불통·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매사에 의문을 품고, 결단을 못 내린다.
그러면 이들에게 의사는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첫째 조심조심 예의바르게 대하여야 한다. 공손히 인사해야 한다.
둘째, 더욱 합리적인 자세로 진료에 임하여야 한다. 예컨대 병력청취·검사·진단·치료와 같은 순서로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환자에게는 그때마다 상황과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약이나 검사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약간만 언급한다. 필요한 것인데도 툭하면 거절하기 때문이다.
셋째, 환자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가 임의로 선택할 여지를 몇가지 조치중에서 남겨야 한다. 예로 X레이 촬영시간을 본인이 좋은 쪽으로 고르게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의사는 환자가 지닌 지식과 양식을 기회있을 때마다 높이 평가해주어야 한다. 조두영 <서울대의대 정신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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