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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심상찮은 발언」에 긴장|헌특가동 서두는 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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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속자 석방의 가시적 성과를 보아가며 국회개헌특위에 참여하겠다던 신민당이 갑자기 특위의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앞길에 대한 불안, 타협분위기에 대한 재야 쪽의 따가운 눈총, 각 계파간 입장차이 등으로 7월말께나 「헌특」에 승선할 것으로 예상됐었으나 30일의 확대간부회의가 이를 뒤엎고 조기 출진을 결정한 것이다.
회의에서는 비주류의 이기택·김수한 부총재가 먼저 『헌특의 빠른 가동』을 주장, 적극적으로 나왔고 소극적 입장을 보여오던 동교동계의 이중재·양정식 부총재도 태도를 바꿔 이에 적극 동조했으며 오히려 조기가동을 주장해온 상도동계의 최형우 부총재·김동영 총무가 침묵을 지켰다.
이민우 총재는 제헌절특사를 보아가며 헌특위원명단을 제출하겠다고 한 자신의 발언도 있어 이 같은 방향을 선창할 입장이 아니었을 뿐 물론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회의에서 구속자 석방 및 민정당 개헌안제출 촉구결의와 전국지구당별 직선제 개헌 촉진대회를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헌특활동의 담보물로 원외투쟁재개를 선언한 듯한 인상도 있지만 결성대회 때와 같은 대규모 군중집회의 양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민당은 명단 조기제출로 방향을 바꾼 가장 큰 이유가 헌특 구성에 동의해놓고 명단을 가지고 구속자 문제를 흥정한다는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국민여론의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단제출을 구속자 석방 확인과 연계시키는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던 동교·상도동계가 양 김씨 간의 사전조정절차도 없이 견해통일을 보인 것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한 공동인식이 뭔가 급박하게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을 낳게 한다.
상도동 측은 개헌문제와 구속자 석방문제를 같은 비중으로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구속자가 석방된다고 반드시 개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헌이 되면 구속자 문제는 자동적으로 풀리므로 구속자 문제는 개헌의 하위개념이란 논리다.
또 민정당안 제출 후라야 헌특을 본격 가동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개헌추진세력이 신민당인 만큼 신민당안 하나만 놓고 협의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동교동계는 헌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던 만큼 헌특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 정부·여당의 「진정한 민주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의지확인을 구속자 석방에서 찾아야한다는 논리를 폈던 것이다.
아울러 재야 쪽의 시선까지 복합 작용돼 헌특 활동보다는 구속자 석방문제에 더 치중해온 게 사실이다.
동교동의 이런 자세는 명단의 조기제출을 주장한지 하루도 못 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해 1일의 정무회의에서는 다시 제헌절특사를 본 후 명단을 내자는 주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동교동을 포함해 신민당 내에는 『합의개헌이 안되면 현행헌법을 고수한다』『개헌협상을 내년 3,4월까지 끌고 갈수도 있다』는 정부·여당 상층부의 움직임을 심상찮게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정부·여당이 아시안게임 이후로 특위의 본격활동을 지연시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와 함께 헌특이 지연될 경우 자칫 신민당이 여론의 화살을 받을 우려가 있으며 헌특가동 때까지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민정당의 일방적인 직선제반대홍보가 의외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초조감도 작용한 것 같다.
따라서 신민당으로서는 헌특활동을 통해 여권의 개헌진의를 파악하고 「수상한 움직임」을 견제하며, 합의된 연내 개헌의 목표를 추진하는 것이 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구속자 석방문제에만 매달려 공백기간을 길게 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그러나 반 동교동 측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장내보다는 장외에 비중을 더 두고있는 동교동계로서는 여권의 속셈을 떠보고 안되면 장외투쟁으로의 방향전환을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하고있다.
양정식 부총재가 『헌특 참여보다는 1천만 개헌서명운동 계속, 춘천·인천결성대회 강행 등 원외투쟁병행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을 끈다.
아무튼 이런 결론을 바탕으로 신민당은 헌특에서 민정당안 제출촉구와 구속자 석방, 사면·복권을 외치며 민정당의 헌특을 통한 지연작전·호헌 논리의 재등장 등 「수상한 저의」를 집중 공략할 태세다.
신민당은 헌특위원 인선에 곧 착수, 가급적 금주 안에 명단을 제출해 헌특을 빨리 가동시키자는 생각인데 당 지도부는 여야균형을 위해 민정당 쪽에 중진급인선을 요청중이며 자체적으로도 중진으로 구성한다는 방침아래 자연스레 계보안배가 되도록 기준을 마련중이다.
주류대 비주류의 비율이 12대5 또는 10대7의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거론되고 있는 인사는 재선 이상 급으로 권오태 김수한 김영배 김현규 노승환 목요상 박관용 박용만 박일 박종률 박찬종 박한상 서석재 송원영 유준상 이기택 이용희 이중재 이우돈 이우희 정상구 조순형 허경구 허경만 홍사덕 황낙주 의원 등이다.
초선 중에선 박실 정책실장과 당내 이론가로 위치를 굳힌 장기욱·신기하 의원 등도 거명되고 있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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