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삼성전자 발빠른 리콜은 ‘준비된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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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균
경제기획부 기자

리콜(Recall)을 선언했는데 주가는 오르고 있다. 1조5000억~2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무색할 정도다. 삼성전자와 배터리 폭발로 문제가 된 ‘갤럭시노트7’의 리콜 얘기다. 160만원대를 유지하던 이 회사 주가는 리콜 검토 소식이 처음 나온 지난 1일 158만원대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후 안정을 찾아 3거래일 연속 상승, 164만원대로 다시 올랐다(7일 종가는 162만원대).

애초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 출시하지 못한 삼성 측의 과오는 명백하다. 그럼에도 시장이 예측보다 충격을 덜 받은 이유는 삼성이 발 빠른 리콜을 결정해서다. 삼성 관계자는 “과거 해외 사례를 참고해 반면교사로 삼으려 했다”고 전했다.

전례들은 ‘시간 끌지 말고 우려는 단번에, 확실히 잠재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은 1982년 ‘타이레놀’에 문제가 생기자 즉각 대응에 나섰다. 광고를 내 “원인 규명 전에는 약을 복용하지 말라”고까지 하면서 미국 내 3100만 병의 모든 제품을 리콜했다. 쉽지 않은 결정에 시장 점유율이 곤두박질쳤지만 이듬해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우려가 불식되자 타이레놀의 위상은 전처럼 굳건하다.

일본 산텐(參天)제약 역시 2000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가며 문제와 해결 의지를 적극 알리고, 제품을 전량 리콜했다. 소비자들의 수많은 격려 전화와 e메일이 쏟아졌다. 이 회사는 처방용 안약 부문에서 일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삼성은 리콜 전략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왔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2013년 ‘리콜과 기업가치’ 보고서에서 2000년부터 10년간 리콜을 발표한 상장사 38곳 101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소극적(비자발적) 리콜을 한 기업들은 발표 다음날 주가가 평균 1.54% 하락한 반면, 적극적(자발적) 리콜을 한 기업들은 0.4% 하락에 그쳤다. 후자의 경우 리콜 발표 3일 만에 오히려 수익률이 오르는(0.015%)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빠르고 적극적인 리콜’만이 시장 우려를 최소화하고, 훗날을 기약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보여주는 분석 결과다.

이를 파악하고 문제 발생 시 적용하려면 이 같은 다양한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더 많은 국내 기업들이 이번 리콜 사태를 리콜 전략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이유다. 물론 최선은 리콜 가능성 자체를 안 만드는 것이지만, 때론 차악(次惡)에 대한 준비도 필요한 법이다.

이창균
경제기획부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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