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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반상 라이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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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도장은 기타니(木谷)도장이었다.그러나 기타니에게도 숨은 라이벌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의 원로기사 세고에 겐샤쿠(懶越憲作)9단이다.

그는 융성하는 기타니(木谷)도장을 건너다보며 한·중·일의 최고수를 키워 기타니도장에 맞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세고에9단은 중국의 기린아 우칭위안(吳淸源),일본 최고의 유망주 하시모토 우타로(僑本宇太郞),그리고 한국의 천재 조훈현을 제자로 맞아들인다.

과연 이들 3명은 모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일본바둑의 황금기는 기타니와 세고에의 경쟁의식이 만들어낸 산물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도장들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이들의 공로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권갑룡도장'과 '허장회도장'은 돋보이는 활약과 함께 매년 바둑계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고 있는 치열한 라이벌로 꼽힌다.

권갑룡7단이 설립한 강남의 '권갑룡도장'은 어느덧 32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했고 이들 단(段)의 합계는 현재 96단이나 된다. 1백단 돌파의 초읽기에 들어 간 상황이다.

최대 경쟁자인 강북 '허장회도장'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충암의 대부격인 허장회9단이 운영하는 이 도장은 현재 17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했고 이들 단을 합치면 71단에 달한다.

권갑룡도장이 배출한 프로기사 중에서 최고의 스타는 이세돌9단이다. 허장회도장은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송태곤5단이 간판 스타다. 이세돌과 송태곤의 대결은 두 도장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대결이기도 하다. 지난번 후지쓰배 결승에서 이세돌9단과 송태곤5단이 맞붙었을 때 이들 도장은 남모르는 승부의식으로 불타올랐음은 물론이다.

권갑룡도장에는 이세돌9단 외에도 최철한5단.원성진5단.윤준상초단 등 신예강자들이 즐비하다. 권갑룡7단의 장녀이자 한국 여류기사 중 가장 먼저 4단에 오른 권효진, 여류국수를 연패했던 윤영선3단, 바둑학 교수 남치형초단 등 여류기사를 9명이나 배출한 것도 이 도장의 특징이다.

허장회도장 역시 김명완6단.안영길5단.박정상4단 등 신예강자들이 잔뜩 버티고 있고 여류기사로는 현미진2단과 김세실초단이 있다. 이 도장 출신 중에서 최고참인 김영삼6단이 지도사범 격이고 충암 출신의 양재호9단.조대현9단 등이 실전지도를 맡고 있다.

바둑계에선 이 두 도장을 '권도장'과 '허도장'으로 줄여서 부른다. 입단대회가 벌어지면 이들 도장은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프로기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야말로 도장의 명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험 쌓기를 위해 해외교류도 활발하다. 권도장은 중국 녜웨이핑(衛平)도장과, 허도장은 일본의 기쿠치(菊池)도장과 해마다 교류전을 갖고 있다.

권도장은 중국권에서 유명해 대만.중국의 유학생들이 상당수 수련 중이고 이미 대만 출신의 프로 2명을 배출한 바 있다. 다음달엔 중국의 미녀기사 마오자쥔(毛佳君)초단이 연수차 이곳에 온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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