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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잘못하면 유죄…지진 분석 쉬쉬하는 지진학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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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발생한 강진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 아마트리체 [AP=뉴시스]

최근 290명이 사망한 강진 참사로 전문가 의견이 절실한 이탈리아에서 지질학자들이 의견을 내기는커녕 발언 자체를 아끼고 있다. 지진예측에 실패한 과학자들이 기소를 당했던 선례가 이들의 입을 막으면서 여진 예측과 대책 마련에 혼선을 빚고 있다.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운영하는 뉴스매체인 사이언스인사이더는 지난달 29일 “이탈리아에서 또 다른 강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나왔지만 과학자들이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에 대한 위험을 느끼고 있다”며 “지진 예측 실패로 사법절차 직전까지 갔던 과거 사례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강진 진앙과 불과 40㎞ 떨어진 라퀼라에서 2009년 4월 발생한 규모 6.3 강진으로 당시 308명이 사망하자 1년 후 검찰은 국립재난예측방지위원회(CGR)에서 활동하던 위원 등 과학자 6명과 공무원 1명에게 책임을 물었다. 검찰은 이들이 지진 발생 며칠 전 지진이 날 것 같지 않다는 예측을 내놔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며 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해 모두 6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국제사회와 과학자들은 이탈리아의 결정을 비난했고 작년에서야 이탈리아 대법원은 과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공무원은 그대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라퀼라 사태 이후 이탈리아 당국은 CGR의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지진 분석만 전담하게 하고 대중에 홍보하는 업무는 시민보호부(DPC)가 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사이언스인사이더는 “이번 지진 참사에서 CGR과 DPC의 분담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CGR은 지진 발생 후인 지난달 25일 분석 보고서를 DPC에 제출했지만 DPC는 재작성을 지시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프란체스코 물라르기아 교수는 “DPC가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정확한 용어를 요구했다”며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다시 작성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 다음날인 금요일에 수정본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정본은 “이번 지진이 이펜니노 산맥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지진”이며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약한 건물의 내구성을 높여야 한다”는 등 일반적인 담론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국립 지구물리학·화산학 연구소의 지질학자인 안드레아 테르툴리아니는 “라퀼라 사태의 유산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이전 지질학자들은 소신껏 발언했지만 지금은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입장 발표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이탈리아 지질학자들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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