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차가 반(半)온라인 판매 나선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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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자동차가 반(半) 온라인 판매에 나섰다.

르노삼성차 측은 ‘e-커머스 시스템’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온라인 구매 절차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국내 완성차 판매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르노삼성차는 지난달 31일 출시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를 판매하면서 고객들이 온라인에서 견적을 내고 계약금까지 결제할 수 있는 ‘e-커머스’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2일 밝혔다.

온라인 견적 서비스는 국내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이미 선보이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계약금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언뜻 큰 발전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차량 견적에서 인수에 이르는 구매 과정의 일정 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반 온라인 판매’라 볼 수도 있다.

과정은 간단하다. 차량을 구입하고자 하는 고객은 인터넷 QM6 마이크로 사이트(https://event.renaultsamsungm.com/qm6)를 방문해 기본적인 차량 정보를 확인한 뒤 트림(차급)·옵션·색상을 정해 온라인 견적을 뽑는다. 여기까지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제공하는 온라인 견적 서비스와 같지만 다음부터는 조금 다르다.

견적을 낸 고객은 차량 인수지역을 선택한 다음, 본인인증 과정을 거쳐 카카오페이로 계약금을 결제할 수 있다. 실제 거래 과정의 일부가 온라인으로 들어온 셈이다. 그 다음부터는 오프라인 구매 과정과 비슷하다. 선택한 대리점을 찾아 잔금을 치르고 차량을 인수하면 된다.

르노삼성차가 이 같은 판매방식을 선보인 건 국내 완성차 업계 ‘거인’인 현대·기아차에 비해 크게 열세인 판매망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에 익숙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현재 르노삼성차의 전시장 수는 전국 235개로 현대차의 820개·기아차의 728개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업인력 수도 2300명으로 현대차의 1만560명과 비교하면 5분의1 수준이다.

SM6에 이어 QM6 출시로 국내 완성차 시장 3위를 노리는 르노삼성차로선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 대리점을 늘리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비용이 적게 들고 무한대의 네트워크로 확장할 수 있는 온라인을 새로운 판매 네트워크로 포섭한 셈이다.

방실 르노삼성차 마케팅담당 이사는 “e-커머스는 O2O(Offline to Online) 트렌드에 맞춰 고객이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차량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선진 구매 시스템”이라며, “고객 반응을 모니터링해 제도 보완이나 다른 차종으로의 확대 시행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자동차 판매 방식은 다른 나라와 조금 다르다. 한국은 완성차 업체가 직영으로 대리점을 운영하거나 대리점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지만, 다른 나라는 완성차 업체가 딜러들에게 차량을 넘기면 딜러들이 차량을 판매하는 구조다. 미국의 경우 생산자 권장가격(MSRP)가 있지만 차량 구매고객이 딜러와 마주 앉아 가격을 협상할 여지가 있다. 완성차 업체도 딜러들에게 ‘인센티브’란 이름으로 판매촉진비를 제공해 가격을 깎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대리점이 대부분 ‘원 프라이스(One Price)’란 이름으로 완성차 업체가 매월 정하는 공식 할인 이외에 추가 할인을 받기 어렵다. 르노삼성차 역시 출범 당시부터 ‘원 프라이스’ 정책을 실시해 대리점마다 제각각 할인을 제고하는 것을 막아왔다.

소비자 입장에선 장단점이 있다. 굳이 발품을 팔거나 협상을 하지 않아도 어느 대리점을 가든 비슷한 가격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는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외국처럼 딜러 간 경쟁에 따른 할인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수입차의 경우 딜러 간 경쟁으로 ‘원 프라이스’ 정책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완성차 브랜드의 같은 차종이라 해도 딜러마다 가격이 달랐고, 완성차 브랜드에서도 딜러 인센티브란 이름으로 출혈경쟁을 조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에는 딜러들이 온라인으로 진출해 출혈경쟁이 더 심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소비자로선 싼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도 되지만, 가격이 무너지면 시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사실이다.

지난달엔 온라인 상거래업체인 티몬이 재규어 XE 차량을 온라인으로 판매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식수입업체인 재규어코리아는 “티몬과 판매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반발해 ‘유령 차’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구매 의사를 밝혔던 27명 가운데 실제 잔금을 치른 건 1명에 그쳤다. 아직 병행수입이나 서드파티 수리(공식 애프터서비스가 아닌 수리점)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선 공식수입업체의 입김이 클 수밖에 없다.

르노삼성차의 반 온라인 판매는 국내 자동차 판매구조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기차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테슬라도 주력 판매채널은 온라인이다. 완성차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판매망 역시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과 가격이 지나치게 혼란스러워지지 않는 선이라면 구매경로가 다양해지는 건 소비자들에게 나쁠 게 없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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