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신용 낮을 때 요긴한 부동산 P2P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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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 신림동에 10세대 규모의 빌라를 지으려고 준비 중인 김기명(61)씨는 공사비 5억원이 부족해 A저축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전체 건축자금 중 자기자본 비율이 20%가 안 된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했다. 김씨는 대부업체에 문을 두드리려 했지만 연 20%가 넘는 고금리에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씨는 고민하던 중 주변 소개로 부동산 P2P대출업체인 테라펀딩에 대출신청을 했고 4일 만에 연 13% 금리에 대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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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부동산P2P(Peer to Peer, 개인 간 거래) 대출 시장이 뜨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초 핀테크 활성화의 일환으로 P2P대출 규제를 완화한 게 계기가 됐다. P2P대출이란 은행이 아닌 온라인 상에서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형태를 말한다. 가령 건축비용 5억원이 필요해 P2P업체에 요청하면 이들이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모아 건축주에 빌려준다. 대출기간이 끝나면 P2P업체가 대출자로부터 대출금을 받아 투자자에게 원금과 약정 이자를 지급한다. P2P업체는 대출자로부터 대출금의 연 1~3%, 투자자에겐 투자금액의 연 1%의 서비스 이용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집 지을 때 자기자본 15%면 자격
저축은행보다 이자 저렴 연 11~13%
투자자는 연간 수익률 10% 가능
예금자보호법 적용은 못 받아

한국P2P금융협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난달 31일까지 부동산P2P 누적 대출금액은 약 1000억원이다. 신용 P2P대출을 포함한 전체 누적 금액(2266억원)의 45%에 달하는 규모다. 부동산 P2P대출은 ‘건축자금 대출’과 부동산 담보대출 형식의 ‘주택담보대출’로 나뉜다. 이 중 건축자금 대출이 대부분이다. 부동산P2P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기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던 개인건축주들이 몰리고 있어서다. 이들은 대부분 담보나 신용도 부족으로 연 20%에 달하는 저축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P2P대출 금리는 연 11~13%로 저축은행·대부업체보다 부담이 훨씬 작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신축 빌라를 짓겠다는 수요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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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대출은 은행과 달리 서류에 집착하지 않는다. 테라펀딩 양태영 대표는 “은행들이 100억원 미만의 공사는 담보나 신용도가 낮으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P2P업체는 서류보다는 건물이 들어서는 주변 상권과 시세, 신축 후 분양이 잘 될 수 있을지 등 현장 중심으로 심사를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전체 건축자금 중 자기자본비율이 20% 이상이어야 하지만 P2P업체는 15%만 되면 대출이 가능하다. 또 대출 심사만 최소 2~3주가 걸리는 은행과 달리 일주일 내로 끝낸다.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도 은행들은 담보의 70% 수준에서 대출을 해주지만 P2P업체는 최대 90%까지 해준다. P2P업체인 ‘8퍼센트’의 이효진 대표는 “저축은행에서 높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이용하던 고객이 부동산P2P 담보대출로 갈아타 이자 비용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P2P대출은 투자자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긴다. 연 10%(세전)의 수익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예금금리는 연 1%대 중반이다. 또 담보가 있어 원금손실 위험이 작다. 현재까지 부동산P2P업체들의 연체율은 0%다. 업계에서는 부동산P2P대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이종아 선임연구위원은 “전세난으로 다세대·다가구 수요가 늘면서 주택 공급도 늘고 있다”며 “개인 건축주들의 부동산P2P 대출 이용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P2P로 눈을 돌리는 업체들도 생겼다. 신용대출을 주로 다뤘던 8퍼센트는 담보대출, ‘빌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시작했다.

그러나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P2P대출은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아 대출자가 대출금 상환을 못하면 투자금 전부를 잃을 수도 있다. 테라펀딩 양태영 대표는 “대출금 상환이 안 되면 P2P업체로부터 위임을 받은 부동산신탁회사가 건물을 대신 분양·임대하거나 경매 처분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며 “만약 경매에서 낙찰가가 투자금보다 낮으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부동산 경기가 꺾여 분양이나 임대가 되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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