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난다" 15년 만에 법정선 '드들강 살인' 용의자 혐의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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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15년 만에 법정에 선 '전남 나주 드들강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혐의를 부인했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강영훈)는 31일 여고생을 성폭행한 뒤 강물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김모(39)씨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김씨는 또 다른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어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검사가 법정에서 기소 요지를 밝히자 김씨는 가끔 눈만 깜빡인 채 신중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어 재판부가 공소 사실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전혀 그렇지 않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씨는 "성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인가"라는 재판부의 물음에 "'예' '아니오'로 답변하기 어렵다. 성관계를 한 기억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의 체내에서 나의) DNA가 나왔다고 해서 그렇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만나 성관계를 한 여러 여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은 있다는 의미다. 김씨는 재판 내내 적극적이고 단호한 어조였다.

사건 당일 행적에 대해서는 "(우연히 발견한 사진에 찍힌 날짜를 보고 사건 당일) 여자친구, 조카와 함께 강진에 간 사실을 기억하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사건 직후 여자친구를 데리고 강진에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씨의 변호인도 "범행 동기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에 대해서도 "이유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및 기소 요지를 조목조목 언급하며 증거가 다소 미흡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사건 당일 피해자가 피고인과 채팅을 한 사실이 맞는가" 등의 물음에 검사가 "그렇게 추측된다" 등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면서다.

검찰과 김씨 측은 김씨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 김씨의 전 여자친구 등 7~8명을 증인으로 신청키로 했다. 김씨의 동료 재소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김씨가 한 적이 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한 인물이다.

피해자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좋은 재판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계속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또 재판부의 지적에 검사가 반박하지 못한 데 대해 걱정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10월 19일 오전 10시, 26일 오전 10시, 28일 오전 10시에 차례로 다음 재판을 진행키로 했다. 증인 신문 등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김씨는 2001년 2월 4일 새벽 드들강변에서 당시 여고생이던 박모(17)양을 성폭행한 뒤 목을 조르고 강물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광주광역시에 사는 박양을 채팅으로 만나 차량으로 이동한 뒤 범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건 직후 박양의 체내에서 용의자의 유전자(DNA)를 채취한 나주경찰서는 대조할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사건이 장기 미제 상태였다. 하지만 11년여 만인 2012년 8월 "박양의 몸에서 나온 체액과 교도소에 수감된 김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대검찰청 검사 결과를 통보받고 재수사해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김씨가 성관계를 넘어 살해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김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주지검은 경찰과 피해자 가족의 재수사 요청을 받고 재수사를 벌여 사건 발생 15년여 만에 김씨를 기소했다. 검찰의 재수사 과정에서 법의학자는 "피해자가 성관계 직후 살해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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