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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 곳도 아니고 7곳…ISA 수익률도 계산 못 하는 금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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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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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경제부문 기자

“명색이 금융사가 투자상품 수익률 계산도 제대로 못했으니 민망한 일 아닙니까.”

기업은행 실수 계기로 따져 보니
삼성·대신·현대 등 착오 수두룩
기본원칙만 따랐어도 없었을 일

최근 사석에서 들은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한탄이다. 기업은행의 일임형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수익률 오류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기업은행의 ‘고위험 스마트 모델 포트폴리오(MP)’ 상품은 지난달 28일의 은행권 일임형 ISA 수익률 비교 공시에서 3개월 수익률 2.05%로 1위를 차지했다. 올 봄 ISA가 출시된 이후 첫 수익률 비교 공시였기 때문에 의미가 컸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말 그대로 민망했다. “기업은행 상품 수익률이 좀 이상하다”는 다른 은행들의 의혹 제기가 이어지자 이 은행은 이틀 뒤 수익률을 0.84%로 정정 공시했다. 이마저도 틀렸다. 29일 발표된 금융당국의 일제 점검 결과 이 상품은 수익률이 0.58%였던 것으로 최종 정리됐다.

다만 기업은행은 “금융사 망신을 제대로 시킨다”는 비난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기업은행뿐 아니라 6개 증권사도 수익률 계산을 잘못한 것으로 이날 밝혀졌기 때문이다.

기업은행과 삼성·대신·현대·미래에셋대우·HMC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가 총 47개 MP 상품의 수익률을 잘못 공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시 수익률과 실제 수익률 격차가 1%포인트를 넘은 상품도 4개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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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모두 단순 실수에 의한 오류로 결론났을 뿐 고의로 수익률을 조작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22개 상품은 공시 수익률보다 실제 수익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달리 보면 정말 큰 일이다. 투자상품의 수익률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금융사가 속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 금융권의 근본 실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작업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대부분 기본원칙을 숙지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MP의 기준가는 편입된 자산의 하루 전날 평가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지만, 많은 금융사가 당일 평가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기초자산 매입 시점이 아닌 상품 출시일부터 수익률을 계산한 금융사도 많았다. 비영업일에 발생한 수수료와 수익을 수익률 산정에 반영하지 않은 어이없는 실수도 있었다. 공시 이전에 금융사 자체 수익률 검증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한숨이 나올 뿐이다.

ISA는 5년짜리 단발성 상품이 아니다. 가입대상의 제한과 중도해지 금지 등 제약에도 ‘반퇴 시대’ 해결사로서 갖는 의미가 작지 않다. 금융사가 초보적인 ‘산수’를 못 해 상품의 의미가 퇴색하고, 금융소비자가 신뢰를 거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해당 금융사들이 금융당국의 ‘엄중 주의’보다 더 무서운 건 ‘고객의 신뢰상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보다 정확하고 투명하게 ISA를 운용해야 한다.

기업은행에 한 마디만 더 하자. 금융당국 조사에서 이 은행의 또 다른 ‘실수’가 적발됐다. 금융사는 MP 운용방법을 바꿀 경우 기존 고객에게도 변경된 MP 운용방법을 적용해야 하지만 이 은행은 기존 고객에게는 기존 운용방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이 때문에 2686명이 총 300만원의 평가손실을 입고, 1만6415명이 총 4700만원의 평가이익을 얻었다.

기업은행은 “손실 고객들에게는 29일 중 전액 손실보전 조치를 하고, 이익 고객의 이익금은 환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비싼 수업료다. 국책은행이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박진석 경제부문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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