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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생광전」그 예술과 생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고 박생광화백은 단기를 쓰고 「그대로」란 순 우리말 호를 사용하는 고집에서 보듯이 그의 우리것에 대한 집념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그가 우리 전통에서 민족예술을 구현하고자 애썼던 것중의 하나가 바로 「무속」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일련의 무속계열의 작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81년. 이후 85년까지 16개의『무속』 시리즈, 『무룡도』, 6개의 『무당』시리즈등을 발표했는데 이같은 그의 작업은 85년 5월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렸던 르 살롱전의 포스터로 채택돼세계에 알려지면서 「샤갈」과 비견되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무속을 소재로 삼게된데는 무당 김금화씨(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풍어제기능보유자)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내고가 김씨를 처음 만난것은 80년 여의도에서 열렸던 「국풍80」-. 굿판을 휘감아도는 김씨의 신들린 춤사위에 매료된 그는 81년 7욀 미국에서온 김씨의 신딸 채희야와의 내림굿장을 찾아가 하룻밤 이틀낮을 꼬박 함께 새웠다. 이후 김씨의 굿판이라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않고 빠짐없이 따라다니며 스케치, 83년에는 「김금화 무당굿」이라 쓰인 『무당①』을 완성했다.
그의 무속작업 역시 생지에 부분적으로 묵을 떨어뜨려 발묵 시킨다음 그 위에 주황의 색선을 긋고 다시 진채, 구획된 면을 메워나가는 방법을쓰고 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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