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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횡보에 지친 투자자 ‘거꾸로 펀드’에 눈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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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0년 이상 보유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단 10분도 들고 있지 마라.”

코스피 2000 회복하면 환매 행렬
‘지수 하락→수익’ 인버스에 투자
세제혜택·중소규모 상품에도 몰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투자 원칙이다.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1956년 100달러로 시작한 투자 자산은 668억 달러(8월 블룸버그 집계)로 불어났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이런 원칙이 먹히지 않는다. 주식은 물론이고 펀드도 그렇다. 10년은커녕 1년 들고 있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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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귀책 사유를 투자자들의 조급함으로만 설명하기엔 석연치 않다. 미국과 달리 국내 시장이 장기 투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2006년 1만선으로 시작한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6000선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결국 최근엔 1만8000선을 돌파하며 증시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반면 국내 코스피 지수는 2011년 2200선 돌파를 끝으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2000선을 중심으로 박스에 갇혔다고 해 ‘박스피’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코스피 2000시대를 열어 젖힌 건 펀드 자금을 앞세운 기관의 매수세였다. 그러나 지금 기관은 힘이 없다. 지수가 2000선에 가까워지면 투자자들은 펀드 환매로 그간의 수익을 지키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시장이 상승 흐름을 타면서 지난 4일 2000선을 탈환하자, 환매 자금이 쏟아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지난달 29일부터 25일까지 18거래일 연속 자금이 유출됐다. 총 1조4479억원이 빠져나갔다. 주로 ‘큰손’들이 투자하는 사모형을 빼고 공모형만 보자면 더 심각하다. 지난 6월 30일 이후 25일까지 40거래일 연속 2조3379억원이 빠져나갔다. 이렇게 빠져나간 돈은 머니마켓펀드(MMF) 등 안전자산에 흘러들어 갔다. MMF 설정액은 사상 최대치인 130조원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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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가 박스권의 상단에 머물면서 인버스펀드로 관심을 돌리기도 한다. 인버스펀드는 지수가 떨어져야 수익이 난다. NH투자증권 문수현 연구원은 “코스피가 오랜 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다 보니 저점에 사서 고점에 파는 매매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면서 인버스펀드에 1조9000억원이 몰렸다”고 말했다.

환매 대열 속에서도 돈 들어오는 펀드가 있기는 하다. 유안타증권 김후정 연구원은 “최근 한 달간 돈 들어온 펀드는 세 가지 종류였다”며 “설정액이 2000억원이 넘지 않는 중소규모 펀드, 3년 이내 출시된 새로운 펀드, 소득공제·연금저축 등 세제혜택이 있는 펀드 등”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세제 혜택이 있는 펀드에 돈이 꾸준히 유입됐다. 올 들어 ‘한국밸류10년투자소득공제증권투자신탁’과 ‘신영마라톤소득공제증권자투자신탁’ 등에는 300억~400억원의 돈이 몰렸다. 펀드 기근 시대 눈에 띄는 성적이다.

삼성자산운용 김용광 상품마케팅본부장은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펀드 투자로 딱히 재미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며 “수익률에 대한 기대는 접고 세제 혜택이라도 보자는 수요가 몰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1인당 연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 연금저축펀드는 최대 400만원 한도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연말정산을 통해 52만8000원(400만원×13.2%)의 세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펀드가 최소 돈을 까먹지만 않았더라도 세제혜택만으로 연 2.9%의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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