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진체」의 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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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들은 인생을 정리하고 떠나는 팔순나이에 박생광은 오히려 그의 예술적 청춘을 다시 시작하고 꽃피우다 작년 이맘때 세상을 떠났다.
1주기를 맞아 마련된 그의 유작전 (6월10일까지·호암갤러리) 은 사실은 84년 미술회관 개인전이후 다음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발표회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타계하기 1년 전 박생광은 정말로 신들린 듯이 그려냈다.
강렬한 단청원색읕 구사하면서 도전적인 형상으로 밀어붙인 무속화·불화·여인·옛집·장생 그림들은 우리의 전통 채색화가 가질 수 있는 힘의 아름다움이고 주술성의 또 다른 멋이다.「잘생긴 것을 내나라 옛에서 찾고 ,마음을 불교에서 본 나의 어리석은 그림」이라던 그의 겸손한 인사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대작을 좋아하여 보통1백호, 적어야20호,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아 1천호짜리 대작도 그렸다.
이 대작을 위하여 그는 마루방을 헐어내어 작업실을 넓히고 큰 화폭을 펼친 다음 그 위에 각목을 얹고 기어다니며 단청을 칠해 나갔다. 그것은 팔순노화백의 마지막 예술적 정열을 불태운 역작이 되었다.
전시장 한가운데 웅장한 자태로 걸려 있는 『전봉준』과 『역사의 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드라마 같은 예술적 투혼에 절로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수 없다.
박생광은 그의 글주전업 동창생이던 청장스님을 회고하는 일대기에서 역사인물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
그것은 『초기의 일대기』, 조지계고 후 시해사건』을 거쳐 『동학농민전쟁과 녹두장군』 이라는 거작으로 일단막을 내린 것이다.
분바른 장식화로 된 민족기록화들 따위가 이 앞에서 명함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오만이고 치기임 따름이다.
적어도 박생광은 우리시대의 역사전란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현재적 삶속에서 숨쉬고 있는 부분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낱낱장면들을 평면적으로 나열,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는 녹두장군의 얼굴표정으로 그 나머지 부분의 이야기서 함축하는 서술적 형상방식을 취했다.
그가 좀더 작업하여 숭화되고 순화된 우리시대의 채색전을 많이 제작했었으면 하는 아쉬용은 새삼 느끼지만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그의 유작을 이렇게 기릴뿐이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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