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인상에 발목 잡힌 한국 증시…‘도로피’ 우려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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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오랜만에 ‘박스피’ 탈출을 꿈꿨던 한국 증시도 암초를 만났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잭슨홀 미팅(연례 경제심포지엄)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이르면 다음달에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라지만 미국 금리인상은 신흥국 증시에 부담을 준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화 가치가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신흥국에 몰렸던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지난달 1일부터 26일까지 코스피지수는 50.12포인트(2.53%) 상승했다. 이 기간 중 외국인은 국내 주식 4조903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40거래일 중 33일이 매수 우위였다. 기관과 개인은 각각 4조7760억원, 1조5784억원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이끈 상승장이었다.

그러나 금리인상 전망이 다시 부각된 지난주부터 외국인의 투자 심리가 변하고 있다. 외국인은 주초부터 매도 움직임을 보이더니 25일~26일 이틀 동안 7000억원어치 이상을 순매도했다. 최근 두 달 동안의 매도 규모 중 가장 컸다.

마주옥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주식시장이 차별화되고 있지만 금리 인상이 단기 조정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도로피(도로 박스피) 우려가 커진 게 사실”이라며 “당분간 박스권 상단(2050)을 뚫긴 어렵고, 2000선까지 물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인상이 유동성 축소 우려를 키우기도 하지만 경기회복 기대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과 맞물리지 않으면 조정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진다. 국내 기준금리는 6월 1.5%에서 1.25%로 낮아진 뒤 7월과 8월엔 동결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달 금리동결 이후 “금리가 실효 하한선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정책 대응 여력이 소진된 것은 아니다”고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은은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금리인상을 단행할 경우 한은은 금리인하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다음달 9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일단 동결하고 다음달 20~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결정을 지켜본 뒤 후속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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