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실패한도전』2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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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4년 가을 박대통령은 공화당 안에 새로운 주류를 만들어 내는 파벌 재편성에 착수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이기간 중 정구영당의장체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정당의장에게 사표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다. 정당의장도 대통령의 그런 의도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주류다, 비주류다 해서 야단들이었지만 그때 만해도 비주류는 원내에 몇 사람뿐이야. 별 문제가 안 돼. 그런데 주류 내부에서 소위 강경 주류다, 신 주류다하는 분파가 생겨. 김용태군하고 길재호군이 유별나게 사이가 나쁘다고 해.
비주류가 김종필을 반대하는 것은 김종필을 둘러싸고 있는 강경 주류 몇 사람 때문이야. 이런 얘기도 들려. 아마 대통령도 그런 얘기를 들었겠지. 대통령도. 당총재로서 당내가 시끄러우니까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모양이야. 그건 좋은데 총재로서는 당연한 일인데…가만 보니까 비서실장·정보 부장 이런 사람까지 당내에 심상찮은 공작들을 하는 모양이야. 이 사람들이 당내에 끼어 들고, 정치에 끼어 들고 그러면 정당정치가 헝클어져. 그런데 이런 소리가 들려. 의원들이 내게 와서 「참 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고 해.
뭐냐니까 주류·비주류 할 것 없이 모두 이제는 이후낙 실장을 업고 들어가려고 경쟁들입니다」고 그러는거야. 참 딱하고 한심한 일이지. 당이 돈과 권력에 조종되는 징조야. 그때 내 생각으로는 당내에서 의원들끼리 서클도 만들고 이런저런 문제에 의견이 갈리고 경쟁을 하는 것,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거기에 대통령의 각료들이 끼어 들면 안 된다는 거였어. 그래 대통령에게 당을 정비하는 방안-이런데 대해서 내 심정을 얘기하고 물러나야겠다고 작정하는데 대통령이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아. 그렇다고 불쑥 사표를 내던지고 그만 두는건 나로선 책임을 다하는 것이 못돼.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나는 방관자가 된 셈이지. 이제 정구영씨가 말하는 파벌 재편성-그러니까 김종필이 없는 사이 김종필계가 분열하던 경로를 잠깐 살펴보자.
박대통령에게 파벌 재편성을 건의한 것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던 박상길씨다. 박씨는 정국이 격동하던 60년5월 이후 이후낙실장이 임해오던 대변인 자리를 떼내어 신설한 공보비서관 자리에 임명됐다.
그가 대변인을 맡고 며칠 안 된 어느 날 박대통령은 공화당총재직을 사임하기로 결심하고 박대변인에게 총재직 사임 성명서를 써오도록 지시했다.
그는 즉석에서 총재직 사임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당선했는데 대통령이 정당을 떠나는 것은 정당정치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고 반론을 폈다. 대통령은 그 의견을 옳다고 보아 즉석에서 총재직 사임 결심을 바꾸었다. 박씨는 자유당시대 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공보담당이지만 그런 경력이 그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정치적 건의를 할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대통령은 때로 정치문제에 대해 박대변인에게 의견을 묻고 조언을 구했다.
대통령은 줄곧 공화당의 당내분쟁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느 땐가 대통령은 박대변인에게 당사람들이 파당이다 뭐다 심지어 정계개편 얘기까지 한다고 짜증스러워 했다. 그래 박대변인이 건의를 했다.
「공화당의 문제는 요는 군인 출신과 구정치인간의 대립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의 파쟁도 골칫거리지만 그런 파쟁을 조정하는데 애를 먹는 것은 당내에 대통령 직계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직계세력이랄까, 중도 주류랄까 이런걸 만드는 것이 좋다. 주체세력 안에서 한사람을 뽑고 민간 정치인 중에서 한사람을 꼽아 둘이 손잡게 해서 대통령이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새로운 주류 세력을 만들어내면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박대변인의 아이디어였다.
대통령은 좋은 구상이라고 했다. 그럼 누구와 누구를 손잡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검토했고 그 결과 주체세력 중에서 길재호 ,비주류중에서 김성곤을 선택했다.
10월의 어느 날 박상길대변인은 길재호의원을 만났다. 그는 공화당 내에 새로운 중도 세력을 만들어 파벌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김성곤국회재경위원장과 손잡고 일하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길의원은 고개를 저었다.「우리가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할 때 그런 사람들하고 손잡으려고 한 줄 아십니까 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대통령의 뜻이라고 해도 좀처럼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박대변인은 길의원이 맡지 않으면 주류중의 다른 누구라도 이일을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뜻은 확고하다고 일러주었다. 길의원은 결국 승낙을 했다. 단 그사람과 협력해 일을 해나가자면 당의 요직과 자금, 그리고 대통령의 확고하고 변함없는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대변인은 다시 김성곤의원을 그의 신문노자택으로 찾아갔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전제하고 역시 길의원과 손잡으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길의원한테는 이미 얘기를 했고 그가 동의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김의원도 처음엔 펄쩍뛰었다. 「자식뻘밖에 안되는 아이들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고 툭하면 권총부터 뽑아드는 그런 버릇들인데 손을 잡으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나 노련한 기성 정치인이다. 그는 대통령의 제안은 그의 정치를 펼쳐가는데 굴러온 뜻밖의, 그렇지만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라는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표면으로는 마지못한듯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단 당내 세력을 재편성하자면 자신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리, 대체로 당의장의 바로 아래인 당부의장쯤은 주어야 한다고 했다.
며칠 뒤 박대통령은 김성곤·길재호 두 의원을 청와대로 물렀다.
술자리가 마련되고 이후 이실장도 동석했다.
공화당의 김성곤·길재호팀에다 이후낙실장등 대통령의 막료진까지 접목하는 집권 권력내 질서재편성이 출발하는 밤이었다.
이 모든 공화당 정권의 기본질서였던 P-K라인 (박정희-김종필라인)을 허물게 되는 중대한 변화의 예고다. JP팀들이 잠자고 있던 시간 그 둘을 권력의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작업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대통령이 왜 새로운 친위대를 만들려 했으며 한편 그 두 사람이 선택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공화당 파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화당의 파벌은 초기엔 김종필의 사전 조직파와 창당을 공식화하면서 참여한 소수의 반김종필계 주체들로 단순화되어 있었다. 그랬는데 김종필의 1차외유후 공화당을 제쳐놓고 일어났던 법국민정당운동그룹을 흡수하고 뒤이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원내 안정세력 확보를 위해 구자유당계등 기성정치인 다수를 다시 공화당에 받아들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하면서 당내 그룹의 색깔이 다양해졌다.
한일회담 파동으로 권력의 중심부가 흔들리자 공화당안의 인맥 둘을 중심으로 서클이 생기고 시국 수습 방안을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종필이 한일회담 반대진영의 공격의 표적이 되어 당내 통제기능이 약해지자 비주류가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김종필이 당의장을 내놓고 2차외유에 내몰린뒤 당내 파벌은 세 갈래로 구분할 수 있었다.
파벌의 원내분포를 보면 김용태·길재호·김동환등으로 대표되던 JP직계 주류가 30명선, 친주류 중도파가 2O명선, 그리고 장경순·김성곤·오치성등이 중심이 된 비주류가 2O명선이었다.
이런 파벌세가 말하듯 주류는 원내세력으로도 압도적 다수였고 그나마 사무국을 통한 전국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다. 비주류는 단지 원내 20여명선에 불과했다. 그랬음에도 대통령이 파벌재편성을 시도하게 된 것은 JP부대가 JP가 없는 가운데 틈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통령의 파벌 재편성 구상은 단순히 박대변인의 건의를 받아들였다기보다 주류 내부의 분파 행동이 자청하고 건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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