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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정서영·김소라의 ‘백 투더 퓨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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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람만 옛 일을 회상하는 건 아니다. 미술관도 과거 전시를 돌아본다. 그대로 재현하기도 하고, 재해석도 시도한다. 건물 수선을 위해 지난해 문을 닫았던 서울 율곡로 아트선재센터가 공사를 병행하며 20여 년의 여정을 돌아보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27일 개막하는 ‘커넥트1:스틸 액츠(Connect1:Still Acts)’다. 설치미술가 이불(52), 정서영(52), 김소라(51) 세 여성 작가를 초대해 ‘그 때’를 돌아보며 ‘시간 잇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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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이불씨가 199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한 ‘사이보그’ 연작. [사진 이불 스튜디오]

3층에는 이불 씨가 1998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에 내놓았던 ‘사이보그’ 연작과 숱한 화제를 몰고 왔던 ‘장엄한 광채’가 세월을 거슬러 돌아왔다. ‘설치미술의 여전사’란 별명을 얻을 만큼 남근 중심 시각문화를 비판했던 이 작가의 통렬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번득인다. 인간과 기계의 접합, 여성과 테크놀로지의 경계를 깨부순 ‘사이보그’는 그의 작품세계를 포괄하는 상징처럼 전시장 천정에 걸려 관람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트선재센터 기획전 ‘커넥트1’
“20년 되돌려 미래 미술관 고민”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날 생선을 전시했다가 썩어가는 냄새 때문에 작품을 철거당하는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른 ‘장엄한 광채’가 20년 만에 재현된 것도 의미 있다. 이 작가는 “이런 때가 아니면 다시 제작할 기회가 없는 지라 작가로서 신나고 기쁘다”고 말했다.

텅 빈 듯 덤덤한 공간이 눈을 시원하게 만드는 2층은 정서영 작가의 2000년 개인전에 나왔던 ‘전망대’ ‘꽃’ ‘수위실’ 세 점으로 채워졌다. 2m 높이 나무 조각 ‘전망대’는 도심 곳곳에 공사장이 많았던 시대의 반향이다. 수장고에 보관되는 상황에서 나무가 뒤틀리고 일부 내려앉아 일종의 생명체이기도 한 작품의 보존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텅 빈 벽에 기괴하게 붙어있는 ‘모르는 귀’는 요괴의 귀처럼 삐죽한 모습으로 공간의 흐름에 리듬을 불어넣는다.

1층은 김소라 작가가 2004년 2인 전에 선보였던 프로젝트 ‘라이브러리’를 되살려냈다. 작가가 지인들에게 받은 100권의 책 중 골라낸 문구와 면면을 활용한 작품은 관람객이 선별해 책으로 복사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김 작가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될 행위예술도 즐길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관장은 “그동안 복합문화공간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아트선재센터의 뒤를 돌아보고 미래의 미술관, 전시장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는 하나의 형식으로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2016년 재개관을 계기로 ‘커넥트(연결)’ 시리즈를 통해 소장품을 현재 시간으로 불러내 공공과 의견을 나누는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11월 20일까지. 02-733-8945.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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