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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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석가모니는 29세에 출가, 6년 동안 가혹한 고행의 길에 정진했다. 그후 부처가 되었다.
그러나 고행이 곧 부처가 되는 길은 아니었다. 도리어 고행은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일 뿐 인생 문제의 참된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그의 수행자 「고오타마」의 얘기가 있다. 석가를 본받아 6년 동안 갖은 고행을 했다. 너무 굶어서 죽음의 문전에 이르는 수행도 했고, 호흡을 억제해 숨이 거의 멎는 체험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고행 생활도 그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하지는 못했다.
석가가 성도 후 그때까지 함께 고행하고 있던 다섯 수행 승들에게 설교한 첫마디 말이 있다.
『수행 승들이여, 세상에는 두개의 극단이 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 기울어져도 안 된다.』
두개의 극단이란 「관능이 이끄는 대로 욕망의 쾌락에 빠지는 일」과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데 열중하는 일」이다. 이 양극은 석가 자신이 절실히 체험한 일이다.
그가 태자로 있던 시절, 세 곳의 궁전에 천하의 미녀들을 거느리고 온갖 욕망을 만족시키는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그에게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석가는 어느 날 누구도 모르게 성을 빠져 나왔다. 수행자 무리에 끼어 고행의 길을 택한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이 중도에서 동찰과 인식을 얻었고, 적멸과 깨달음과 눈뜸과 열반에 이르렀다.』
석가는 출가전의 악행, 출가 후의 고행, 이 둘을 초월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심신의 조화를 얻은 것이다.
중도를 실천하는 길은 여덟 가지로 제시했다. 올바른 견해 (정견), 올바른 결의 (정사유), 올바른 말 (정어), 올바른 행위 (정업), 올바른 생활 (정명), 올바른 노력 (정정진), 올바른 사념 (정념), 올바른 명상 (정정). 바로 이 팔정도는 비단 불교도가 아니라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 될만하다.
우리는 흔히 중도라면 「사꾸라」로 치부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흐리멍덩하고 미적지근한 태도. 아니면 기회주의자로 편을 가른다.
그러나 불타가 선택한 중도는 대립된 양극을 엄정하게 포용하고 스스로 자주적인 행동을 취하는 자세다. 따라서 소극적인 회피가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인 행동을 말한다.
16일, 석가탄신일을 보내며 불교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중도를 생각해 본다. 이 시대에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중도의 사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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