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세종청사, 이제 불 좀 끄시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기사 이미지

조민근
경제부 차장

“과천청사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밝다.”

경제부처들이 과천에 모여 있던 시절, 관료들의 자부심을 표현하던 말이다. 세종으로 옮겨 간 요즘도 청사의 불은 잘 꺼지지 않는다. ‘맏형’인 기획재정부가 자리 잡은 4동이 대표적이다. 경제정책 방향, 세제개편안 발표에 이어 예산안을 짜는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면서 도무지 불 꺼질 날이 없다. 출근길에선 간신히 옷만 갈아입은 듯한 푸석푸석한 모습의 관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세종청사로 이전한 이후 관료들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사명감도 약해졌다는 일각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다.

그러니 한국 경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오히려 너무 부지런해도 문제가 생긴다는 게 함정이다. ‘밤샘’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 산물은 반기마다 나오는 경제정책 방향이다. 해외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개발연대의 유산이다. 하지만 이것도 요즘은 통 약발이 듣지 않는다. 저성장·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6개월짜리 처방으로 대처한다는 게 애초 무리다. 이리저리 쥐어짜낸 단기 대책이 끝날 때마다 마주치는 ‘소비절벽’ ‘재정절벽’도 갈수록 가팔라진다. 상반기에 재정을 당겨 쓴 뒤 하반기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소모적인 일도 연례화했다. 세법도 매년 뜯어고치는 통에 말 그대로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

과잉 의욕은 모든 걸 틀어쥔 채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방식의 정책으로 표출된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이 거둔 이익을 전기요금 부담을 낮춰 주는 데 쓰기보다는 에너지 신(新)산업에 투자하고 싶어 했다. 그게 ‘생산적’인 데다, 멋들어진 투자 계획을 내밀어야 뭔가 일을 한 것 같이 보인다는 지극히 관료적인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에 지친 관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휴가지가 있다. 일본 규슈의 다케오(武雄)시다. 특히 시립도서관을 꼭 들러봤으면 한다. 3년 전 민간업체가 나서 딱딱한 공급자 중심의 도서관을 시민 친화형 휴식 공간으로 바꿔 명소가 된 곳이다. 창고에 감춰져 있던 장서가 전면으로 나와 찾기 쉽게 배열됐고, 중심부엔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사서 대신 ‘접객 담당자’가 시민을 맞았고, 연중 무휴로 문을 열었다. 이후 인구 5만 명의 시에 시립도서관을 찾아 연간 10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이런 혁신을 이끌어낸 이는 총무성 관료 출신의 젊은 시장이다. 민간업체에 도서관 영구 운영권을 준 파격적 결정 이후 그는 학원식 교과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는 교육개혁도 추진했다.

사실 관료사회의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세종으로 가기 전부터다. 관료 몇 사람이 좌지우지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 경제의 사이즈가 커지고, 이해관계는 복잡해진 게 근본 이유다. 정부 주도로 자원 투입량을 늘리는 성장 방식도 한계에 달했다. 대안은 민간 주도의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관료들이 우선 좀 놓아야 한다. 청사의 불이 꺼졌다고 불안해할 시대는 지났다.

조민근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