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그 나라 사람이 발전시키는 것"-「슐츠」, 각계 지도자들과 잇단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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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슐츠」미 국무장관은 23시간 남짓한 방한기간 중 잇단 공식일정을 보내면서도 3당대표를 비롯한 한국의 각계인사와 비공식조찬을 가지는가 하면 8일 하오에는 경복궁을 둘러보는 등 다채로운 일정을 가졌다.

<만찬>
○…이원경 외무장관이 7일 저녁 한남동 외무장관 공관에서 베푼 「슐츠」미 국무장관초청 만찬에는 이세기 민정·김동영 신민·김용채 국민당총무 등 정계인사, 김경원 주미대사, 「워커」주한 미 대사, 「시거」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등 수행원, 「미까나기」주한일본대사 등 25명의 인사가 부부동반으로 참석.
만찬에서 3당 총무들은 「슐츠」미 국무장관과 한국의 민주화와 관련, 의미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언.
△「슐츠」=언제쯤 국회가 소집되는가.
△이민정 총무=6월 임시국회소집을 준비중인데 대체로 갈 풀릴 것 같다.
△「슐츠」=임시국회가 열리면 무엇을 하는가.
△이=우선 여야 합의하에 헌법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슐츠」=잘 될 것으로 보느냐.
△이=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잘 풀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슐츠」=(두 야당총무를 향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야당총무=민주화 일정을 발표하지 않는 한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
△「슐츠」=민주화 일정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야당총무=88년 이전에 직선제 개헌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와 같은 민주화일정의 발표 없이는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 정부와 여당은 신뢰할 상대가 못되기 때문에 얘기가 안 된다.
△이=나는 두 야당총무를 좋은 동반자라고 소개했듯이 야당을 적이 아니라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야당총무는 계속 민주화 일정이 제시돼야 타협할 수 있다는 뜻을 재천명) .
△「슐츠」=미국의 민주주의는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이며, 영국도 그렇다. 그렇다고 미·영이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한국도 과거 직선제를 해본 경험이 있으나 성과가 없지 않았느냐.
△야당총무=미국의 간선제는 직선제나 다름없는 제도가 아니냐. 우리는 타협하기 어렵다.
△「슐츠」=민주주의는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폭력으로 정치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바로 그렇다.
한편 3당 총무들은 「시거」차관보 주변의 식탁에 않아 식사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시거」차관보는 우리의 학원소요사태 원인과 학생운동의 현재와 과거의 차이점에 대해 주로 관심을 표명하고 좌경학생운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더라는 것.

<3당대표 등 조찬>
○…「슐츠」장관이 8일 아침 정동 미 대사관저에서 3당대표 등 한국의 각계인사를 초청, 조찬을 함께 한자리에서는 국내문제가 많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이민우 신민당총재가 『역시 민주주의는 국내의 우리자신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좋다』고 말하자 「슐츠」장관은 이를 받아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한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나라 사람들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
조찬도중 동석한 「시거」차관보는 특히 극렬 좌경의식화학생들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그 원인에 대해 질문(「시거」차관보는 이마를 다쳤는지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왔다).
이에 대해 국민당의 이만섭 총재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아직 적게 가진 자와 많이 가진 자 사이의 갭이 너무 큰데 원인이 있으며 가난한 학생들이 많아 좌경의식화에 물들 염려가 크다』고 답변.
노태우 민정당대표는 이를 보충하여 첫째 60년대 일본의 상황처럼 GNP가 2천 달러 수준으로 올라가니 교육수준은 높고 요구사항은 많은데 국가의 공급이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2천 달러 시대의 갈등에 우리도 접어들었고, 둘째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현대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세번째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좌경의식세력을 키우려고 끈질기게 노력해온 북한이 88올림픽을 앞두고 결사적으로 갖은 노력을 총집중해 그 영향이 적지 않게 미친 것이라고 분석.
노 대표는 『이런 세 가지 이유로 극렬 좌경의식분자의 숫자가 자꾸 불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이 갈등 속에서도 모두 절망하지 않고 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늘 위로 향하기 때문에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서 『동트기 전이 제일 어둡다』(the darkest before the dawn) 고 영어로 말해 참석자들이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다.
노 대표는 또 「슐츠」장관에게 『한가지 제안이 있다』면서 『이번 동경에서 G-7(선진7개국)정상회담이 있었는데 88년 올림픽이후에는 한국을 포함시켜 G-8 회의를 갖는 게 좋을 것』이라고 해 좌중이 웃음.
노 대표는 정치문제를 얘기하면서 『여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문제는 저 밖에 있다』면서 『그러나 그 밖의 문제도 국내문제이므로 우리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
「시거」차관보는 어제 외무부관리들을 만났더니 4·19세대인 한 관리가 요즘 학생운동은 자기들 때와는 다르다고 하더라면서 학생들의 반미성향을 조심스럽게 거론했으나 참석자들의 응답이 거의 없었다는 것.
○…「슐츠」미 국무장관주최의 조찬모임에 참석하고 온 이민우 신민당총재는 『우리보고는 7시30분까지 오라고 해놓고 「슐츠」장관은 8시에 나타나는가하면 정동대사관저 입구에서 내 차의 보니트까지 열어보는 등 불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피력.
이 총재는 『그런 꼴을 당하고 그만 돌아올까도 생각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참았다』며 『「슐츠」장관은 김대중·김영삼씨가 이날 상오 예정된 「시거」미 국무차관보와의 면담에 불참을 통보한 것에 대해 이유가 무엇이냐는 등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고 부언.
이 총재는 『우리헌정사 38년 중 민간정부는 13년에 불과하며 25년간이나 군인정치가 있었다는 점, 유신과정 등을 완곡히 설명했다』고 했다.

<총리예방>
○…노신영 국무총리는 8일 상오 방한중인 「슐츠」미 국무장관의 예방을 받고 20분간 요담.
△노 총리=전두환 대통령이 정당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여당은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여당은 한국의 정치발전을 외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은 동맹국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모든 것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할 것으로 믿고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며칠전 인천시의 극렬 시위는 국가와 국민을 외해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슐츠」=한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은 폭력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이번 주말에 신민당의 마산집회가 있는데 정부는 주최측에 다시 좋지 않은 상태가 생기지 않도록 촉구 중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최대한 인내로 임하지만 인천사태 같은 극렬 시위가 재발한다면 정부는 예방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슐츠」=한국은 특히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고 질서가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개도국 중 모범국가이며 평화적 정권교체가 필요하다.
△노=우리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시행과정에는 많은 어려움도 있겠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점진적이고 착실하게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거-야 인사요담>
「슐츠」장관을 수행한 「시거」차관보는 8일 신민당의 이철승 의원, 김동영 원내총무, 김상현·정대철 전 의원 등을 「램버슨」주한 미 공사관저로 초청, 상오10시부터 11시10분까지 한국의 민주화문제 및 시국전반에 관해 논의.
이 자리에서 김 총무는 『왜「슐츠」장관은 우리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두 김씨를 만나지 않는가』면서 『우리나라는 예의와 격식을 중요시한다』고 「슐츠」장관이 두 김씨를 직접 초청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는데 「램버슨」공사는 『장관의 일정이 바빠서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는 것.
이철승 의원은 『우리나라는 안보와 민주화가 동시에 필요한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면서 『그러나 민주화의 과정은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미국의 얘기에 동감한다』고 피력.
김상현씨는 『우리 헌정사를 보면 우리 정치인들은 차선을 모색치 않아 최악의 불행한 역사를 수차 경험한바 있다』면서 『야당과 지식인그룹에서 민주화달성 추진방법에 대해 이론이 없지 않지만 대화와 설득으로 단합된 민주전선을 형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부연.
이에 대해 「시거」차관보는 『한국의 안보와 민주화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는 데는 동감』이라며 『민주화와 인권문제는 안보와 함께 점진적으로 평화적인 개혁을 이룰 수 있은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지기를 우방으로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시거」차관보는 『한미무역역조에 대해서도 한국정부가 상당히 관심을 갖고 응해주고 있는데 소중하게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한국이 일본의 처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
이에 신민당측 참석자들이 「슐츠」장관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시거」차관보는 『나와 대동소이하다』고 답변.
김 총무는 『지난 선거에서 대통령직선제를 주장한 야측이 64%, 호헌 주장세력이 36%밖에 안됐기에 개헌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말하고 『무엇보다 정부·여당은 88년에 새 헌법으로 대통령을 직선 하겠다는 정치일정을 밝힌 뒤에야 진정한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
김 총무는 『다수의석을 가진 민정당이 있는 한 대통령의 「국회내 합의가 있으면 임기 전 개헌을 불반대」한다는 말은 국민의 직선제 개헌열기를 식히려는 전략으로밖에 안 보인다』면서 『사면·복권문제 등에서처럼 민정당의 생태는 급하면 하는척하다가 고비만 넘기면 외면하는 등 지금껏 4번이나 속였다』고 주장.
김 총무는 반미문제와 관련 『거리에 나와있는 미군 중 누구하나 행패 당한 일이 있느냐』면서 『근본적으로 미국을 신뢰하지만 80년 현 독재정권을 도왔다는 사실이 신뢰를 일시적으로 미움으로 변하게 한 것 같다. 우리국민 스스로의 역량으로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다만 미국은 80년같이 또다시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
정대철 전 의원은 『80년 여론조사에서는 91%가, 요즘 들어서는 89%가 직선제개헌을 원하고 있다』면서 『직선제 개헌은 하늘과 국민의 명령이고 민주화·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그 길 외에 선택할 대안이 없다』고 강조.
정 전 의원은 『두 김씨는 의전상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은 분위기가 돼있는 것 같지 않아 초침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하더라』고 전언.
김상현 전 의원은 『국민지지를 받고있는 김대중씨를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상정하고 민주화를 운위하는 일은 마치 어떤 땅 밑에 엄청난 바위가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하고 건축설계를 하는 것과 길은 것』이리고 지적.
김 전 의원은 『그러나 야당도 호헌에서 임기 내 개헌가능쪽으로 변화한 상황을 진일보한 것으로 받아들여 전략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야할 시점에 온 것으로 안다』고 피력.
이에 대해 「시거」차관보와 「램버슨」공사는 『우리는 군사쿠데타의 시작과 중간을 돕지 않았고 다만 대한민국의 안보를 외해서 노력하고 생각해왔다』고 말하고 야당의 직선제 개헌주장에 대해서는 『잘 들었다』고만 했다는 것.
한편 이날회동에서 정대철·이철승씨 등은 영어로, 김동영·김상현씨는 동석한 「스티븐슨」서기관의 통역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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