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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난국 수습에 청신호 켜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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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30청와대 3당 대표회동으로 개헌 논의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됐다. 『여야가 합의하면 임기 중 개헌에 반대 않겠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제의는 지금까지 난관으로 남아있는 개헌시기와 내용 중에서 개헌시긴 에 관한 장애요인을 해소 할 수 있는 제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의 제안에는 여야의 합의라는 단서가 붙어있고 『89년 개헌이 바람직하다』 는 개인적 소신 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어 그 제의가 과연 임기 내 개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야당 측에서 제기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민우 신민당총재도 회담석상에서 국회에서 여야합의를 전제한 점을 들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 라는 의문을 제기했었다.
민정당내에서는 노태우 대표위원이 『발전적 제의』라고 표현하긴 했으나 대체로 89개헌 소신부만 이라는 표현을 주목하면서 그 동안 의 개헌방침과 논리적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굳이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고있다.
이 때문에 야당일부에서는 개헌 현판식의 열기를 식히고 과격화 해 가는 학생들의 움직임에서 명분을 뺏어내려는 시간 끌기 작전에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정당 측이나, 이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도 임기 내 개헌 이 한낱 시간 끌기의 전술적 제안으로 끝나버릴 수만은 없다는 점을 내심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앞으로 여야의 헌법논의는 개헌을 전제로 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헌법특위가 설치되면 거기에서 헌법문제가 연구 될 수는 없게 됐고 본질문제에 관한 협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이렇게되면 개헌은 결국 국민적 합의로 굳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인식이 국내외로 널리 수용되면 비록 국회에서 여야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88년 대통령선거를 현행헌법으로 치르자고 주장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정부·여당이 마치 속임수를 쓴 것처럼 비난을 뒤집어쓰고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임기 내 개헌 은 88년 대통령 선거를 현행헌법으로는 치를 수 없다는 결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게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정당이 88호 헌 에서 이처럼 선회한 까닭은 상황인식의 변화가 주요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법적인 강경대응과 86·88양대 행사로 모든 것을 대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강경 낙관론이 무너짐에 따라 민정당 측은 헌법논의유보 에서 89개헌, 다시 89개헌논의가능 등으로 오락가락했고 그 사이에 호헌 논리는 저절로 훼손됐다.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겠다는 국회헌법특위 설치안도 강한 갈등 속에 제대로 지렛대구실을 못했다.
88년 선거가 국민의 광범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으로 치러져야 한다는 국내외의 압력, 88년 선거를 현행헌법으로 강행할 경우 야당이 보이코트 하여 민정당 단독 선거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고 그런 상태는 바로 정국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들도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정부·여당은 반전의 계기로 그 동안 최후의 카드로 미뤄놓았던 임기 내 개헌 을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게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 동안 숙제로 미뤄져왔던 여권내의 권력승계에 대한 내부의 인식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인상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당의 주도와 책임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여권의 내부조정이 바로 헌법대안까지를 미리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권의 대응대세에 상당히 폭넓은 선택의 여지를 두고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민정당 측이 4·30회담이후 당장 급하게 추진하려는 것은 구체적인 개헌논의가 아니라 개헌논의를 장내로 수렴해야겠다는 것이다.
신민당 개헌현판식·교수시국선언·종교계 등의 개헌요구에 이어 가열되고 있는 대학가의 동향 등이 5월 들어 전면적인 공세로 확대되기 전에 이를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야겠다는 생각이다.
민정당 측은 야당 측이 비록 86개헌·87선거라는 정치일정을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각계의 개헌주장을 대체로 수용한다면 임기 내 개헌 카드를 완전히 뿌리칠 명분은 없다고 보고있다.
신민당이 4·30회담 후 당론을 유보하고 이민우 총재의 전 대통령단독면담 이후 당 방침을 결정하겠다고 한 것도 이 같은 각계여론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민당으로서는 비록 임기 중 개헌 이 진보한 제의라고는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뿌리깊은 불신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임기 중 개헌을 확실히 보장받아야 되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가 전 대통령과의 단독면담을 하겠다는 것도 확실한 언질을 받아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민당이 이 같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만약 신민당이 국회 헌특에 참여할 경우장외 개헌 현판식을 완전히 포기하느냐는 문제와 그에 따른 내부적인 개헌전략의 조정이 필요하게되기 때문이다.
이미 분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학생, 재야의 개헌움직임에 대해 신민당이 확실한 보장 없이 양외를 완전히 버린다면 자칫하면 주요한 세력기반을 상실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신민당이 개헌문제를 양내 투쟁으로 전안할 경우 또 한가지 거쳐야할 난관은 개헌대안에 대한 당내 의견들을 조정해야한다는 점이다.
신민당이 지금까지 내놓고있는 개헌안은 물론 대통령직선제다. 그러나 김대중씨 계는 직선제를 유일한 대안으로 고수하고 있는데 비해 상도동계의 상당수를 포함해 당내다수가 내각책임제에 대해서도 수용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고 이철승씨 등 비주류일각에서는 오로지 내각책임제 한길만 주장해왔다.
대통령 직선제는 신민당이2·12총선에서 당의 공약으로 내세웠었고 지난해 김대중-김영삼씨의 회동에서 원칙적인 합의사항으로 받아들였으며 개헌현판식 등 여러 곳에서 거듭 공언해 왔던 만큼 이제 와서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내각책임제 등 직선제 아닌 대안을 주장하기는 어렵게 되어있다. 말하자면 돌아오기 어려운 다리를 너무 많이 건너왔다는 것이다.
최근 동교동 측은 이례적으로 내각책임제에 비난을 퍼부었고 4·30회담 당일에도 김대중씨는 『내각책임제 회유에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반복하고 있다.
내각책임제에 긍정적인 상도동 측이 대여 협상 폭으로 선회할 기미가 있다고 보고 미리 제동을 걸어두자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민정당 측은 개헌안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이민우 총재는 전 대통령이 『직선제가 곧 민주화는 아니다』 『서구선진국들이 다른 제도를 택하고 있다』고 한 발언들로 유추해 내각책임제구상이 유력한 것으로 전했으나 민정당 측은 이를 『시사적이긴 하나 확정된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민정당 측이 이번4·30회담의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건의된 당내의 사적인 의견들은 ▲현행헌법의 부분개정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제헌국회방식 ▲내각책임제 등 다양한 것이었고 그 어느 것도 당안으로 채택되는데 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대통령직선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직선제 혐오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대통령 직선제가 한번도 민주화에 기여한바 없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방식 때문에 정국을 적대적의 관계로 경화시키고 지역분열을 일으키며 어느 쪽도 승복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정국의 혼란이 수습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고있다.
대통령 직선제가 아닌 방식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중심제·내각 책임제·이원 집정부제 등 간선제일수밖에 없다. 민정당 의원들의 상당수가 내각책임제 쪽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내각책임제만이 현재의 난국을 수습하고 여야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민정당 일각에서는 최근 이뤄지고 있는 당의 정국주도력 강화가 결국 내각책임제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조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까지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민정당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와 같은 대안을 확실하게 당론으로 결정, 제시하여 국회 등에서 개헌론을 주도하자는 의견을 펴고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당의 최종적인 선택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곧 후계체제와도 직접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이유들 때문에 민정당 측은 우선 국회 내에 헌법특위를 구성해놓고 그후 공청회 등을 통해 개헌안을 점진적으로 집약해 나간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을 뿐이지만 권력구조에 대한결정을 곧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안은 대통령직선제와는 다른 방향이 될 가능성이 짙다고 짐작 할 수도 있다.
개헌내용을 놓고 여야가 이처럼 현격한 의견차이를 보인다면 외견상으로는 임기 중 개헌의 조건인 여야합의를 전혀 기대 할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접근 가능한 요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각 당내에 있는 신축성 있는 대안들이 접근 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간에 헌법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시작돼야한다. 우선 여야가 국회 내 헌법특위설치문제에 합의하는 문제가 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헌법특위가 어떤 형식으로 구성·운영되느냐는 것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주목되는 것은 이민우 총재의 대통령면담, 노태우-김영삼 회담 등 고위회담의 실현여부다. 막전의 토론보다는 막후의 절충이 협상의 진전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까지에는 당내의 복잡한 내부조정과정을 거쳐야 하고 재야·학생 등 장외의 견제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고 하겠다. <김학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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