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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 "우리 고대문화의 이론적 모델"|윤내현(단국대)교수가 말하는 「황하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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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황하-.
동양사 5천년의 복판을 흘러온 역사의 강. 이름 그대로 싯누런 탁류다.
1t의 강물에 자그마치 37㎏이나 뒤섞인 진흙은 강이 흘러드는 바닷물조차 누렇게 물들여 「황해」를 이루고 만다.
아늑한 바얀가라의 눈덮인 골짜기서 흐름을 시작, 비스듬히 쓴 ㄹ자 모양으로 티베트의 고원과 감숙의 산악, 고비의 사막과 섬서의 황토대지를 굽이쳐 중원의 대평원을 가로지르고 발해만까지 장장 1만3천여리(5천4백64㎞)를 흐르는 대하.
황하는 1백70만년전부터 인류의 거주지였다. 중국대륙의 북부에 위치한 황하는 길이로는 장강(양자강)에 이어 중국에서 두번째지만 그 유역은 고대문명의 요람이었다. 황하유역은 나일강유역, 메소포타미아지역, 인더스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 고대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진다.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 황하유역엔 이미 1백만명 정도가 거주할 정도로 일찍부터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다. 이러한 초기 문화의 진전과 인류사회의 전개는 황하 중류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상류유역과 하류유역은 사람이 거주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하 상류지역은 산악·고원·사막 등이 차지하고 있어 자연환경이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못했으므로 자연히 문화의 진전도 더뎠다.
하류유역인 산동성지역은 원래 바다에 잠겨있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에 시작된 후빙기를 맞아 황하에 강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자갈·모래·황토 등을 실어 나름에 따라 수천년에 걸쳐 삼각주를 형성시켰고 약4천5백년전 비로소 완전한 산동반도가 이루어졌다.
황하는 인류에게 항상 혜택만을 주는 강은 아니었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였다.
황하의 범람은 막대한 재해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황하는 지난3천년동안 2천번이나 범람했다. 3년에 두번씩은 넘친 셈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인 갑골문에「석」자는 ?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결과일자가 결합된 것으로「홍수가 있었던 날」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시에「석」자는 오늘날처럼「오랜 옛날」만을 뜻한 것이 아니라「며칠전」을 포함한 지난날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고대인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두려움이 홍수였고 그것이 기억에서 오래지 않을 정도로 빈번히 일어났음을 뜻한다.
따라서 황하는 경외의 존재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갑골문에는 황하가 신격화된 하신이 보인다. 하신을「고조하」라고 부른 기록도 보여 황하신을 일반 조상신보다 높은 신으로 신봉하였음도 알 수 있다.
갑골문이 사용됐던 상(은)시대의 최고신은 제였는데 절대적 권능을 가진 제를 제외하고는 황하신이 가장 큰 권능을 가진 신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황하신에 대한 인식은 황하에 대한 고대인들의 존경과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다.
『황하를 다스리는자 중원을 지배하고 중원을 지배하는자 천하를 장악한다』
5천년 동양사는 황하를 다스리려는 치수의 역사였고 황하와 중원을 둘러싼 제민족의 쟁패, 영웅호걸들의 축녹이었다.
「원교근공」·「합종연형」춘추전국의 드라머가 있었고 주시황의「분서갱유」, 「사면초가」의 초한전, 대당제국의 번영이 있었는가 하면 몽고·글안·여진의 정복왕조가 번갈아 천하를 호령하는 흥망도 거듭됐다.
황하는 바로 이 모든 역사의 증인.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고대문명은 중국문학의 기초가 됐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화 형성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중국대륙이 통일되기 이전 황하유역에 존재했던 고대문화는 동아시아 여러 민족이 공유해야할 문화라 해도 지나치지는 않다.
그것은 마치 고대 그리스문화를 서양인 모두가 공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문화를 포함한 중국과 인접된 여러민족의 문화가 황하문화의 주변성·부수성 문화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황하유역에 고대문화가 전개되던 당시 지금의 중국 요령성을 중심으로 하북생 동북부로부터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엔 황하유역과는 다른 거주민들이 독자적인 문화를 전개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의 기초 위에서 고조선의 성립과 한국 고대문화의 형성 및 전개를 보게 됐다.
그런데 후에 황하문화가 중국세력의 성장과 더불어 인접지역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됨에 따라 한국의 고대문화도 그것과 접합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전통적인 한국문화 속에는 자생적·독자적인 요소와 황하문화를 포함한 외래적인 것이 혼합돼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황하문학는 크게 두 측면에서 인식돼져야할 것이다. 첫째는 한국고대문화를 재조명하는데 황하문화가 하나의 이론적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전제위에서 보아져야 하고 둘째는 한국의 전통문화 가운데 한국 고대의 자생적·독자적 요소와 황하문화적 요소를 분별한 기초위에서 그 융합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의식위에 섰을때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도 바르게 될 것이며 황하나 그 유역에서 전개된 문화를 보는 시각도 의미를 갖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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