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이 뭐길래…운동화 못 산 고객에 무릎 꿇은 백화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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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모어 업템포. [사진 나이키닷컴 홈페이지 캡처]

한정판 운동화를 구매하려고 몰려든 고객들 앞에서 백화점 직원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판매 업체의 부실한 안내로 운동화를 구매하지 못한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운동화 한정 판매에 매니어 몰려
부실 공지로 고객 항의 거세자
매장 나몰라라, 백화점 직원 사과
다른 매장서도 비슷한 사례 발생

18일 롯데백화점 광주점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10시50분쯤 이 백화점 5층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나이키 매장 앞에서 직원 A씨(40)가 무릎을 꿇었다. A씨는 이 백화점의 1개 층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나이키 매장과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다.

A씨가 무릎을 꿇은 사연은 이렇다. 이 백화점 5층과 9층에 매장 2곳을 운영하는 나이키는 이날 18만9000원짜리 한정판 농구화 ‘에어 모어 업템포(업템포)’ 50켤레를 판매하기로 했다.

매장 측은 자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9층 매장은 오전 9시까지 줄을 선 사람들에게 판매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반면 5층 매장은 영업시간인 오전 10시30분부터 줄을 선 사람들에게 운동화를 판매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매장의 부실한 공지와 안내로 고객 150여 명이 각 매장과 백화점 밖 등에 3개의 대기줄을 만들었다. 이 중 2개 줄에 선 고객들만 운동화를 구입했다. 사지 못한 이들은 고성을 지르는 등 항의했다.

하지만 해당 매장이 “방법이 없다”며 응대하지 않으면서 성난 고객들을 달래기 위해 해당 층의 총괄 책임자인 A씨가 대신 나선 것이다.

운동화를 구입하러 왔던 김준수(29)씨는 “손님들이 항의를 하는데도 매장 직원들은 운동화를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잘못을 한 매장 측이 돈을 챙기는 사이에 피해는 고객들과 백화점이 입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장 측은 “사전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고지했다. 수량 자체가 적어서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당일 같은 운동화를 발매한 다른 지역 나이키 매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운동화 매니어들은 설명했다.

해당 백화점 측에서 사과 차원에서 보상금을 지불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운동화 매니어들이 급격하게 늘면서 발생한 일이다. 나이키 브랜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운동화 매니어는 1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에 인기 연예인 등의 착용으로 매니어 층이 훨씬 넓어지면서 문제점도 속출하고 있다고 업계는 설명했다.

한정판 제품을 사려는 고객들 사이의 다툼, 주변 매장이 겪는 소음, 제품을 싹쓸이 한 뒤 곧장 웃돈을 받고 되파는 행위, 가짜 제품 판매, 거래 사기 등이 대표적이다. 일선 경찰서에는 “한정판 운동화를 판매한다는 인터넷 중고장터 글을 보고 돈을 보냈는데 제품이 오지 않았다”는 신고가 끊이지 않는다.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는 이런 현실을 알고도 희소성에 따른 인기를 노려 오히려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게 매니어들의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매니어는 “유명 연예인들이 착용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업체들이 일부러 소량 발매해 경쟁을 유도한다. 매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귀띔했다.

백화점도 나이키의 상술에 혀를 내두른다. 모 백화점 관계자는 “한정판 운동화 발매 행사가 열릴 때마다 각종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다른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하지만 워낙 유명 브랜드인 ‘갑’이라서 오히려 ‘을’의 신세인 백화점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나이키 측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전화 연락을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글, 사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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