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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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실수를 많이 해본 사람이 관대하다고 한다. 자랄 때 남의 집 유리창을 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기 집 유리창을 깬 남의 아이를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이다.
참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실수를 해 본적 없지만 남에게 옹졸하지도 않아』하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실수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난 정말 얼굴이 빨개지고 확확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운 일을 참 많이 했어.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해 지곤 해.
그러나 그땐 겁도 없고 아무 것도 몰랐었지』라고 말한 친구는 지금은 아주 편안한 마음이 되어 있다는 걸 금새 알 수 있었다.
다른 한 친구는 『넌 뭘 그리 잘못한 게 많다고 그러니?』하며 나무라는 듯 호기심 어린눈으로 물었다. 자기는 아무런 실수도 한 적이 없다는 듯.
그러나 실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잠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뿐이지 어찌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공놀이 하다가 유리창을 깨는 잘못에서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 때로는 작은 욕심에 새치기를 한다거나하는 잘못 등 성장하면서 양상이 달라지는 실수의 경험을 보통사람이면 대개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은 모르고 자기만 아는 실수, 또 남은 아는데 자기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실수, 그리고 남이나 나나 다같이 알지 못하는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크고 작은 실수의 대부분을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지내기 쉽다. 아니, 의식하지 않으려고 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때, 오래 전 일이 떠오르고 아프게 느껴질 때 깊이 깨닫고 반성함으로써 우리는 더 겸허해지고 인간다와지는게 아닐까.
얕은 생각으로 가볍게 던진 말이 친구의 상처를 덧나게 하진 않았는지,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할 때 혹 오만한 마음은 없었는지, 내 잘못을 덮어두거나 합리화시키지 말고 스스로 엄격히 따져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일이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친구보다 얼굴 빨개질 실수를 많이 했다는 친구 앞에 내 자신이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그 부끄러움은 『넌 나보다 크고 넓구나』 하는 시샘이었을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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